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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2025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14세 야구 국가대표 투수 발탁…일본 찍고 미국으로

중학교 때 남자들과 한팀, 여자야구선수 제도화에 한몫
14세 야구 국가대표 투수 발탁…일본 찍고 미국으로


김라경 (체육교육20) 일본 여자실업팀 투수

중학교 때 남자들과 한팀
여자야구선수 제도화에 한몫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구령, 붉은 흙 마운드 위의 긴장감, 그리고 유니폼을 입은 한 소녀의 오기 어린 눈빛. “여자는 야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김라경(체육교육20) 선수의 도전은 시작됐다. 한국 프로야구는 1000만 관중을 넘기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여성 선수의 무대는 없다. 그럼에도 불모지를 개척하고 국제무대와 프로의 문턱까지 나아갔다. 그는 지금 한국 여자야구의 상징이자 개척자로 불린다. 현재 일본에서 활약 중인 김라경 동문을 서면으로 인터뷰하며, 지난 궤적과 다가올 도전을 들어봤다.
“너는 여자라서 야구선수가 될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말은 오기를 불러왔다. 처음엔 단지 오빠를 따라 야구장에 가는 것이 즐겁고, 유니폼이 멋있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을 설득해 충남 계룡시 리틀야구단에 입단하면서 ‘여자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도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입단 테스트를 보러 가기 전날 밤 ‘내가 정말 야구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한숨도 못 잤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더 큰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더 이상 무대가 없었다. 막막함 속에서도 훈련을 이어가던 과정에서 연맹 회장에게 현실을 털어놓았고, 결국 여자 선수도 중학교 3학년까지 리틀리그를 뛸 수 있도록 ‘김라경 룰’이 개정됐다. “감사하게도 그 개정안에 제 이름을 붙여주셨고요. 이 제도로 인해 현재 야구를 하며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많아졌고 그 후배들이 또 국가대표로서 활약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뿌듯해요”
그는 만 14세에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천재 야구 소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적응의 고통이 있었다. “리틀리그 투수 거리는 46피트(약 14.02m)인데 성인 투수 거리는 18.44m입니다.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국제대회를 뛰어야 했기 때문에 애썼던 기억이 남아요.” 어린 나이에 세계 무대를 경험한 그는 이름값에 대한 부담과 동시에,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하는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모교에 진학한 그는 대학야구연맹 사상 최초의 여자 선수로 기록됐다. 그는 “서울대는 저를 야구선수로 바라봐주고 기회를 열어줄 유일한 학교였기에 꿈이었다”며 “제 꿈이 유한하지 않도록 끝없이 확장시켜주는 토양이자 날개가 돼줬다”고 말했다.
재학 중 그는 여자야구팀 JDB를 창단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그는 “JDB를 통해서 ‘여자야구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며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가 하는 야구에도 스포츠로서의 매력이 담겨있고, 상업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에게 ‘보는 야구’의 즐거움이 곧 ‘하는 야구’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은 다시 한번 시련을 안겼다.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으면서 가족들조차 야구를 그만두길 권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그동안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와 죄송한 마음 때문에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 선의와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야구선수’로서 활약하는 것이라 믿었어요.”



2025년 2월 졸업 후 출국한 김 선수는 3월 일본 실업팀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지난 5월 3일, 4년 간의 재활 끝에 다시 마운드에 섰다. 첫 선발 등판에서 탈삼진 4개, 무실점으로 첫 승을 거둔 순간은 잊지 못할 장면이 됐다. “재활이 너무 길고 힘겹게 느껴졌는데, ‘드디어 다시 출발점에 섰구나’하며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어요.”
재활을 통해 그는 한층 더 성숙한 투수로 거듭났다. “수술 전과 비슷한 구속(118km)을 던지고 있지만 훨씬 더 묵직한 공을 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는 과거와 달라진 자신을 확인하며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1선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2026년 미국에서 출범하는 WPBL을 바라본다. WPBL 리그는 AAGPBL 이후 70년 만에 부활한 여성 프로야구 리그로, 전 세계의 여자야구선수의 꿈의 무대다. 미국 북동부를 연고지로 하는 6개 팀이 참가해, 150명의 정원을 선발한다. “이 리그가 성공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여성들이 당당히 프로야구선수라는 꿈을 꾸고 선망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이미 WPBL을 향한 길목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8월 미국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서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으며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오는 10월 드래프트 지명을 기다리고 있다. 김 동문은 후배들을 위해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안심하고 따라가잖아요. 저는 여자야구에서 안심하고 즈려밟고 갈 수 있는 발판이자 이정표가 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꿈이자 희망이 되어주는 것이 선수로서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제게 서울대는 기회의 창이었고 자랑이었으며 꿈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게 해준 것은 훌륭한 동문들이 계셨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 맥을 이어 더욱 넓은 세상 속에서 모교의 이름을 존재케 하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이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