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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2025년 9월] 문화 동아리탐방

이동에 불편함 겪는 50명 학우 돕는 ‘키다리 친구들’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최초 건의 이동지원차량·화장실 확충 등 시급
이동에 불편함 겪는 50명 학우 돕는 ‘키다리 친구들’
장애인권 동아리 위디(Wee-D)



교내에서 휠체어로 진입이 어려운 문턱을 확인하는 위디 회원들.



김도현 작가와 함께한 ‘장애학의 도전’ 세미나 후 기념 촬영.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최초 건의
이동지원차량·화장실 확충 등 시급
서울대 학생 수 2만여 명. 이 가운데 ‘장애로 이동에 제약이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 본 적 있는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약 50명에 이른다.
2014년, ‘장애 학생도 캠퍼스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세 명의 장애 학생이 모여 ‘위디(Wee-D)’를 만들었다.
이름은 Disability·Diversity·Difference에서 따와, 장애·차이·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배우자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은 장애 학생 4명과 비장애 학생 16명이 함께하며, 차이를 넘어 공존을 모색하는 작은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울대의 배리어프리 환경도 최고 수준일까. 궁금증을 안고 위디 주성현(건축19) 회장을 만났다.
“장애는 흔히 치료해야 할 결함으로만 이해되기 쉽지만, 반드시 고쳐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공존해야 할 존재로 바라봐야 합니다.”
주성현 위디 회장은 이어 “비장애인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이유는 ‘내 문제와는 상관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지만, 결국 관심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위디의 활동은 편견을 깨는 경험의 연속이자, 서울대 안에서 공존의 방식을 실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배리어프리 지도 제작과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설치 건의다. 위디는 낡은 건물 구조를 직접 조사해 접근성 문제를 기록하고 이를 PDF 지도 형태로 배포했다. 과거 ‘총장과의 대화’ 자리에서 제안한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설치는 현재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 “학생회관이 특이한 구조로, 0.5층이 존재해요. ‘학생’회관인데, 기존 엘리베이터로는 ‘학생’이 갈 수 없는 층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위디와 학교 모두에게 중요한 경험이 됐습니다”는 설명처럼 작은 목소리가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위디의 재정은 중앙동아리로서 총동아리연합회의 지원과 회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회원 수가 많지 않아 자체 예산은 제한적이다. 연사 초청 강연이나 외부 캠페인 같은 추가 활동은 주로 공모사업을 통해 충당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상생연대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김도현 작가를 초청해 공개 세미나를 열 수 있었다. 주 회장은 “관심과 수요는 많지만, 안정적 후원이 없다면 장기 지속성은 위태롭다”며 동문들의 뒷받침을 요청했다.
위디가 조사 과정에서 마주한 현장들은 교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문대의 한 컴퓨터 강의실은 문 앞에 턱이 있어 휠체어로는 진입이 불가능했고, 장애인 화장실 안에 샤워실 턱이 생겨 오히려 사용을 막는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음에도 실제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주 회장은 말했다. 이처럼 오래된 건물들의 물리적 한계는 크지만, 작은 구조 변경이나 공간 분리만으로도 개선 가능한 지점이 많다.
이동지원차량 문제 역시 시급하다. 현재 서울대에는 단 한 명의 기사만 배치되어 있어 점심시간에는 공백이 생기고, 학생들이 수업에 지각하거나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발생한다. 수요조사를 통해 시간표를 맞추지만, 식당이나 도서관 이동은 지원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위디는 “장애 학생들의 학습권과 생활권이 동시에 침해되고 있다”며 기사 증원과 차량 확충을 꾸준히 건의해 왔다. 이는 운전자의 식사 시간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라, 추가 인력 배치나 차량 보급을 통해 점심시간에도 원활한 이동 지원이 가능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위디의 정체성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편견을 깨는 공부와 만남이다. 매 학기 진행하는 학술 세미나에서는 장애학 관련 도서를 읽고 토론하며, 장애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쌓고있다. 주 회장은 “토론을 거듭하다 보니 장애를 단순히 불편이나 결핍으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학은 전통적 분류에 속하지 않는 융합 학문으로, 의학·특수교육·사회학·보건학·경제학까지 포괄한다. 앞으로 연구와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라는 점에서 학생들의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앞으로 위디는 배리어프리 조사 방식을 캠퍼스 전반으로 확장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캠페인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교내 구성원이 스스로 공간을 점검하고 정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장애 인권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지도가 완성되는 데 그치지 않고, 캠퍼스 어디서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위디가 꿈꾸는 변화다.
주 회장은 “위디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지원이 아니라 꾸준한 관심”이라며 “특히 장애 학생들의 학습권과 생활권을 지탱하는 이동지원차량 문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문들이 지켜봐 주신다면 작은 변화가 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전했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