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호 2025년 9월] 뉴스 모교소식
인문대에 외국인 교수 15명…영어강의 100과목
단과대학장 릴레이 인터뷰①
인문대에 외국인 교수 15명…영어강의 100과목

안지현 (영문88) 인문대학장
인문대 최초 여성 학장
교과과정 개편·국제화 구상
서울대 인문대 최초의 여성 학장 안지현(영문88) 교수는 지금 인문대의 공간, 제도, 방향을 새로 짜고 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그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중순, 인문대의 변화와 도약의 맥을 짚기 위해 학장실을 찾았다. 단정한 말투와 잔잔한 미소, 그러나 질문을 던질 때마다 또렷하고 분명한 언어로 답을 이어가는 그는, 인문대학의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학장 취임 1년을 맞았습니다. 소감 한 말씀.
“도약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각기 다른 방향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큰 흐름 안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결국 인문대가 가진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이었고요.”
-취임 직후 중장기 계획 실행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단과대는 전략이 있어야 해요. 서울대 전체가 중점 사업들을 정하면, 단과대는 거기에 맞춰 움직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방향 없이 단발성으로 움직이면 지속력이 없어요. 그래서 5개년 중장기 계획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자 했고, 기획위원회를 상설화해 우선순위 과제부터 실행해 왔습니다.”
-제도적으로 가장 빠르게 추진된 건 무엇인지.
“교수들의 연구 시간 확보를 위해 수업 감면 기준을 바꿨어요. 이전엔 동일 과목을 세 학기 이상 맡아야 감면이 됐는데, 지금은 1학점 수업 3개를 맡아도 감면되도록 적립식으로 바꿨습니다. 교육과 연구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조치였죠.”
-교육과정 개편도 활발했죠.
“네. 인문대는 전체 공통교양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요. 글쓰기, 대학영어, 제2외국어, 역사, 철학 등 전공과 교양 모두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역사학부, 제2외국어계열, 영문과 등에서 비교적 큰 폭의 커리큘럼 개편이 있었고요. 융합 강의, 팀티칭도 늘어나고 있어요. 학과별 교육과정은 학생 만족도와 연계해 주기적으로 조정하고 있습니다.”
-인문대가 대규모 광역제를 20년 넘게 유지해 오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특징입니다.
“맞습니다. 약 300명 신입생 중 절반 이상이 광역으로 입학해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합니다. 이는 서울대 내에서도 인문대만의 구조예요. 학과 중심 행정 체계 안에서도 이 구조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요. 최근에는 이 제도가 더 잘 작동하도록 제도 정비를 논의 중입니다.”
-국제화에 대한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고요.
“현재 15명의 외국인 교수가 인문대에 재직 중이고, 영어 강의도 학부와 대학원 합쳐 1년에 약 100과목 가량입니다. 내년부터는 한국학 연계 전공이 신설되어 글로벌 한국학 기반도 키울 예정입니다. 해외 아카이브 기반 연구, 국제 학술 교류, 디지털 인문학 확장 등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장학제도에는 어떤 고민이 있으셨나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습니다. 기존 장학금은 종류는 다양했지만 매 학기 바뀌는 조건 때문에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학업을 설계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입학과 동시에 전체 계획이 가능한 ‘패키지형 장학금’ 체계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생활 지원은 물론, 연구와 진로 설계까지 고려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학장님은 ‘전환’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셨죠.
“위기라고 하기엔 오히려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AI 시대일수록 사고력, 문해력, 윤리, 성찰 같은 능력은 더 중요하죠. 단순한 지식의 축적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듣는가'의 힘입니다. 깊이 읽고, 경청하고, 사유하고, 표현하는 능력. 저는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믿어요. 인문대의 변화는 결국 이런 질문에 대한 서울대의 응답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준비일지도 모릅니다.”
-인문대 건물 증축도 진행 중이죠?
“5·6·7동 일부를 증축해 차세대 인문학자를 위한 복합 연구 공간을 확충하려 합니다. 이미 설계는 마무리됐고,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행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공간은 곧 메시지예요. 인문학적 사유와 토론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구조로 만들고자 합니다.”
-끝으로 동문들에게 한 말씀.
“여전히 대학생들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하고 순수한 존재라고 믿습니다. 인문대를 거친 이들은 결국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결코 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교수님들, 조교와 직원 선생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문대를 아끼고 응원해 주신 동문 여러분의 조용한 실천과 지지 덕분입니다. 장학금, 기부, 응원의 말 한마디까지 모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학생 여러분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인문대는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드릴 것입니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