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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2025년 8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 건강, 나라 건강

서울대 건강, 나라 건강


이용식
토목79
문화일보 주필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6070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서 은퇴하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세대다. 자신의 생애 동안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복 받은 세대이고, 그런 변화를 이뤄낸 주체라는 점에서 위대한 세대다.
문제는 노년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시대의 낙오자나 천덕꾸러기로 취급당할 판이다. 그들은 20세기를 산 기간이 21세기를 산 기간보다 길다. 게다가 삶과 인식의 기초가 20세기에 다져졌다는 점에서, 20세기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나면서 AI 혁명이 세상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필자처럼 기사를 세로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기 시작했던 세대는 더욱 적응하기 어렵다. 자동화 무인화 시대가 닥쳐도 전문직은 건재할 것 같았는데, AI 등장으로 생산직에 비해 더 즉각적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1년 전 어느 모임에서 “AI가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지만, AI를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라는 전문가 얘기를 듣고, 곧바로 유료 ChatGPT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 정부 고위직에 발탁된 그의 예상을 뛰어넘어, 벌써 AI가 일자리를 뺏기 시작했다.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든, 인생의 후반기를 즐기기 위해서든, 변화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으로 AI가 큰 도움이 된다. 교육기관에서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AI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뭐든 공부할 수 있다.
총동창신문 7월호에 소개된 박주용 모교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공부의 재발견’ 및 인터뷰를 통해 AI 시대 생존법과 공부법을 알려준다. 읽고 듣고 외우는 공부는 끝났고, 비판과 사유의 힘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AI를 부리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 다행히도 AI는 결코 질문을 싫어하지 않는다. 비용도 거의 들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획기적 환경이 마련됐다. 동문들은 대체로 공부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으면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서두름병(digital hurry sickness)에 걸리지 말고, 긴 호흡의 글을 읽는데도 앞장서야 한다.
현직에 있든, 1선에서 물러나 다소 한가한 위치에 있든, 동문들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동문 공직자들이 돋보인다. 서울대, 서울대 동문, 서울대 학생의 정신이 건강해야 나라의 현재와 미래도 건강할 수 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20세기형 동문들은 21세기에도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할 의무가 있다. 당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동문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동문회비와 기부금을 내는 일에서 시작하기 바란다. 서울대가 10개 만들어지든, 서울대를 5배 더 뛰어난 대학으로 키우려하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말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마침 올해가 서울대 종합화 50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