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호 2025년 8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당신은 사람입니까?
AI 빠르게 발전하지만 윤리적 판단 책임 있는 결정, 진정한 공감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 기술의 선 설정하고, 그 ‘선’ 넘지 않도록 해야 할 주체 역시 인간
당신은 사람입니까?


이은아
지리92
매일경제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AI 빠르게 발전하지만
윤리적 판단 책임 있는 결정
진정한 공감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
기술의 선 설정하고,
그 ‘선’ 넘지 않도록
해야 할 주체 역시 인간
‘사람인지 확인하십시오.’ ‘사람인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로봇이 아닙니다.’
로그인이나 본인인증 단계에서 이런 문구와 함께 체크박스를 클릭할 것을 요구하는 웹사이트들이 있다.
‘캡차(CAPTCHA)’라는 보안기술을 활용해 웹사이트 접속자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가려내는 작업이다. 단순히 클릭하는 행위만으로 사람인지 여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미세한 행동 패턴을 포착하는 기술 덕분이다. 로봇은 체크박스를 클릭할 때 커서를 최단 거리로 빠르게 이동시키거나, 이동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클릭하지만, 사람은 마우스를 직접 움직여 클릭한다. 이때 생기는 불규칙한 움직임과 미세한 떨림이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횡단보도나 신호등, 버스 정류장이 포함된 사진을 골라내거나 숫자 입력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사이트 접속자가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접속자가 사람인지 로봇인지를 구분하려는 이유는, 로봇을 이용한 자동 접속은 악의적인 의도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표를 싹쓸이하거나, 웹사이트에 게시된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고, 무분별한 댓글이나 광고를 자동으로 작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사람과 기계를 구분하려는 노력은 결국 온라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최소한의 방어선인 셈이다.
인공지능(AI), 챗봇,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거의 모든 것이 사람이 만든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AI는 사람의 말투를 모방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뉴스 기사를 쓰기도 한다. 고객 상담도 AI가 대신하고,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이력서를 1차로 검토하는 일마저 AI가 수행한다. ‘사람인 척하는 기계’가 늘어나면서, ‘기계로 의심받는 사람’도 함께 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AI는 앞으로도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이에 따라 인간임을 입증해야 하는 순간은 더 자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올 것이다. 마치 현실세계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듯, 온라인 공간에서도 ‘나는 사람입니다’를 증명하는 새로운 인증 체계가 필요해질 수 있다. 챗GPT로 생성형 AI 열풍을 일으킨 샘 올트만이 공동 설립한 ‘툴포휴머니티(Tools for Humanity)’는 홍채 인식 장치인 ‘Orb’를 통해 인간임을 인증하는 ‘월드 ID’ 시스템을 개발했고, 전 세계 23개국에서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디지털 신분증을 발급받았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더 자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I가 사람과 비슷해질수록, 인간이 지켜야 할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감정을 흉내 내고, 인간을 위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윤리적 판단과 책임 있는 결정, 진정한 공감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술의 선을 설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할 주체 역시 인간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