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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2025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AI기술 활용 임신 확률 높이고 부담을 줄여 드립니다”

마리아병원 출신 난임 전문의, 배아 선별 패러다임 전환
“AI기술 활용 임신 확률 높이고 부담을 줄여 드립니다”


이혜준 (의학98) 카이헬스 대표


마리아병원 출신 난임 전문의

배아 선별 패러다임 전환

결혼이 늦어지고, 임신과 출산을 시도하는 나이도 연쇄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전체 신생아 10명 중 1명은 난임 치료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다. 시험관 시술, 배아 분석, 이식까지 생식 세포를 선별하고 배아를 키워내는 정교한 과정 속에서 기술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난임이 만연한 시대에, 서울대 동문이 난임 의료기술 기업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은 자연히 눈길을 끌었다.

카이헬스 이혜준(의학98) 대표. 그는 생식의학과 인공지능이 만나는 최전선에서 새로운 해답을 모색하고 있었다. 7월 24일 역삼동 포스코 체인지업 그라운드에서 이혜준 동문을 만났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마리아병원에서 활동했던 이혜준 동문은 누가 보아도 ‘안정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사의 길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향했다. MBA를 통해 경영을 공부하고, 현지에서의 실무 경험을 쌓으며 진료실 밖에서 의료 혁신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2020년경 의료 인공지능 스타트업 ‘카이헬스(Kai Health)’를 창업했다. 그는 창업 초기를 회상하며 “갑작스러운 도약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긴 시간에 걸쳐 의료 외적 활동에 관심을 가져왔고, 비즈니스 현장에 몸담으며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고 했다.
카이헬스의 핵심 기술은 ‘비타 엠브리오’라는 이름의 AI 기반 배아 분석 소프트웨어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생성된 여러 개의 배아 중 임신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AI가 분석해주는 이 기술은, 임신 확률을 높이고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발됐다. 기존에는 현미경을 통해 주관적인 기준으로 배아를 선별했다면, 비타 엠브리오는 AI를 통해 배아의 질을 확인하고 임신 성공 확률을 높인다. 이 대표는 “실패 확률이 높은 시술을 반복하는 건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된다”며 “더 나은 배아를 선별할 수 있다면, 성공에 이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험관 시술의 성공률은 평균 30~40%에 불과하며, 40대 이상 여성의 경우 10% 미만으로 떨어진다. ‘비타 엠브리오’는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등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기대 이상의 성능을 입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3등급 허가와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획득했다. 현재는 건강보험 급여 편입을 위한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신청을 마친 상태이며, 빠르면 한 달 안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더 많은 병원에서, 더 많은 환자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기술의 상용화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다. “기술이 좋아도 병원에서 실제로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현재 난임 치료의 중심인 전문병원을 중심으로 B2B 공급망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그는 ‘비타 엠브리오’를 시작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건강한 배아를 생성하고 성장시키는 전 주기에 걸친 AI 기반 솔루션을 준비하고 있다.
카이헬스는 유럽, 싱가포르, 인도 등에서 이미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상태이며, 미국 FDA 승인도 준비 중이다. 특히 인도에서는 60개 병원을 보유한 2위 규모 병원 체인과 계약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는 “우리가 만든 기술이 실험실마다 설치된 현미경처럼 ‘당연한 도구’가 되는 것이 목표”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자신했다.
생식의학이라는 분야는 기술적 혁신 못지않게 윤리적 고려가 필요한 영역이다. 이 대표 역시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선별’하는 기술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의학적 보조도구일 뿐입니다.” 최근 일부 국가에서 유전자 정보 기반 배아 선별 기술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카이헬스는 그러한 흐름과는 명확히 거리를 두고 있다.
그가 회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은 명확하다. 기술을 통해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주는 일. 그 출발점은 난임 부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이라는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은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타인을 위한 삶으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계기”라고 했다. 그러한 경험이 가능한 사회, 그런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가 기술을 통해 이루고 싶은 미래다. 물론 창업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불확실성과 외로움, 매일의 결정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부담은 그를 흔들었다. “1~2년만 고생하면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고통은 끝나지 않더라고요.” 그를 지탱해준 힘은 결국 ‘가족’이었다. 워라밸은 엉망이고, 딸들과 보내는 시간은 늘 부족하지만, 가족은 언제나 그의 삶과 결정의 중심에 있다. “시간의 양보다 중요한 건 존재의 의미죠. 가족은 저의 모든 선택과 방향의 출발점이에요.”
끝으로 그는 “우리의 기술로 인해 단 한 명의 환자라도 건강한 가족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제겐 가장 큰 성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해답을 전하고 있다. 이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