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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호 2025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읽고 듣는 공부는 끝났다…중요한 건 비판과 사유의 힘”

베스트셀러 ‘공부의 재발견’ 출간, 왜 공부하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AI 시대, 평생 공부의 길 안내
“읽고 듣는 공부는 끝났다…중요한 건 비판과 사유의 힘”


박주용 (심리81)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베스트셀러 ‘공부의 재발견’ 출간
왜 공부하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AI 시대, 평생 공부의 길 안내
AI가 리포트와 논문까지 써주는 시대, 우리는 왜 여전히 ‘공부’를 이야기해야 할까? 누구나 검색 한 번이면 지식을 얻는 세상.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더 공부가 막막하다고 느낀다. 청년은 무기력하고, 중년은 “이 나이에 뭘”이라며 배움을 미룬다. 이 질문에 답하며 지금 뜨겁게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모교 심리학과 박주용(심리81) 교수다.
그의 신간 ‘공부의 재발견’은 출간 직후 주요 서점 교육학·뇌과학 분야 1위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고, 지난 6월 18일에는 2025 서울국제도서전 사회평론 강연 무대에 초청돼 ‘왜 공부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요?’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박찬욱 감독,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등이 방문한 도서전 현장에서 박 교수의 강연은 짧지만 밀도 높은 메시지로 관람객의 눈길을 끌며 ‘공부’의 새로운 의미를 던졌다. 지식은 넘치지만 생각은 메마른 지금, 박 교수의 공부론은 다시 삶을 움직이는 질문이 된다.
서울대 학생들조차 점수와 스펙, ‘꿀강의’에 몰두하며 공부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 이른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왜 공부하는가”를 묻지 않는 구조가 박 교수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서울대 학생 대부분이 점수와 학점에 연연하는 공부를 한다”며 “그렇게 입시에서 성공한 소수는 조직이나 현장에서도 관성을 답습하게 되고, 결국 ‘더 잘하려는 노력’보다 ‘안주’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제가 잘 아는 교육 분야부터 바꿔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부의 재발견’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 단순한 공부법 안내서가 아니라, 공부의 본질과 방향을 다시 묻는 책이다. 박 교수는 시험을 위한 공부뿐 아니라, 삶을 위한 공부, 지식을 넘어서 자신과 타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강조한다.
“삶이 그러하듯 공부에도 굴곡이 필요합니다.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공부도 어려움을 넘어서야 성장할 수 있어요. 공부는 나를 지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는 특히 ‘평생교육’보다 ‘평생공부’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배우는 이유가 더 이상 시험이나 성취가 아니라, 삶의 깊이를 위한 탐색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핵심은 ‘할 마음’이 있느냐죠. 문제 하나를 정해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을 기록해 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집니다.”
박 교수는 수업 시간마다 ‘공부의 주체는 학생’이라는 원칙을 되새긴다. “어떻게든 점수를 잘 받는 게 목표였던 학생들이, 수업이 끝날 즈음엔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어요.” 처음엔 낯설고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질문을 주도하고, 토론을 이끌며 수업을 바꿔가는 모습에서 그는 공부가 ‘살아 있는 과정’임을 실감한다. “한 학생이 그러더군요. ‘교수님 수업은 듣고 나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돼요.’ 그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실천은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생 주도 평가, 권장 공부 시간제, 토론식 수업 등 실험적 수업을 지속해왔다. ‘꿀강의’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과 실패를 견디며 성장하도록 유도한 수업은 졸업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부는 자신의 현장에서 이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AI 시대, 공부의 의미는 더 급격히 바뀌고 있다. 박 교수는 “읽고 듣는 공부는 끝났다”고 말한다. 정보를 찾는 건 이제 AI가 더 잘한다. 남은 건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사유의 힘이다.
“ChatGPT가 보고서를 써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보고서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제시된 정보를 어떻게 구별하고 해석하는지가 진짜 공부입니다.”
그에게 공부는 개인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서울대 동문들에게도 “공부를 멈추지 말라”고 강조한다. “특권을 누리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결할 문제를 찾아 나서는 것이 진짜 리더의 자세입니다. 이제는 스펙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일상도 여전히 공부 중이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공부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며, 다시 읽고 되짚는 루틴을 놓치지 않는다. 유학 시절 경험은 그의 공부 철학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설명하고 정리하면서 비로소 진짜 이해하게 되거든요.”
박 교수에게도 공부는 여전히 ‘숙제’다. 요즘엔 운동 루틴도 생겼다. 은퇴를 앞둔 동료 교수의 권유로 처음 헬스장에 가게 됐다. “답답할 것 같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등 근육과 자세가 달라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느새 일주일에 세 번씩 가게 됐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헬스장에 끌려간 것처럼, 공부도 누군가 옆에서 밀어주면 시작이 됩니다. 인생의 많은 첫걸음이 다 그렇지 않나요?” 그는 이 경험을 빌려 동문들에게 전한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시험이나 승진이 아닌 ‘삶을 위한 공부’, 지금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공부의 재발견’이 그 첫걸음의 동반자가 됐으면 합니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