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모교 조선공학과 교수가 10월 15일 미국 조선학회에서 수여하는 케네스 데이비슨 메달을 받았다. 2년에 한 번 전 세계 조선공학의 모든 분야 연구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에게 수여하는 메달이지만 비서구권엔 유독 콧대가 높았다. 한국인 최초는 물론 비서구권 국가 최초 수상자인 그에게 혹자는 “드디어 산업계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한국의 조선 분야가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붙이기도 했다.

11월 28일 관악캠퍼스 42-1동에서 만난 김 교수는 “케니스 데이비슨 메달도 기쁘지만, 개인적으론 지난해 한국인 최초 독일 바인브룸 추모연사로 지명된 것이 더 기뻤다”고 했다. “조선공학자로서 평생 가도 못 이룰 것 같은 꿈이 바인브룸 추모연사였어요. 메달도 없고, 상장도 없지만 추모 연사가 된다는 거는 저희 전공자들한테는 ‘유체역학에선 당신이 최고’라고 졀정하는 것과 똑같아요.”

무엇이 그를 주목하게 했을까. 김 교수는 선박의 ‘슬로싱(Sloshing)’ 분야 권위자다. 슬로싱은 선박의 움직임에 따라 액체가 출렁이는 현상. 커피잔을 흔들면 커피가 출렁거리듯, 선박 운행 중에 액체가 든 화물상이나 연료 탱크에서 슬로싱이 생겨 선박 구조체에 강한 충격을 유발한다. 탱크 벽면이 파손되기도 하고, 심하면 선박이 두 동강 나기도 한다. LNG(액화천연가스) 같은 극저온 화물이나 암모니아 등 독성이 있는 액체가 새어나오면 더 큰 문제다.

유체역학을 전공한 김용환 교수는 슬로싱이 주는 하중과 파손을 계산해 선박 운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밀한 해석법을 개발해왔다. 그가 개발한 슬로싱 해석법이 올해 초 미국,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와 한국 선급에서 LNG 선박의 하중 예측에 쓰이는 통합해석절차로 승인 받는 쾌거도 이뤘다. “배를 만들면 화물창의 하중이 어떻게 구해졌고, 구조물이 그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 증명한 다음 선급협회 승인을 받게 됩니다. 이전엔 선급마다 계산법이 달라서 조선 회사들이 매번 그에 맞춰 실험과 해석해야 했는데, 통합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더군요. 슬로싱에선 서울대가 프랑스 선박공학회사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거든요. 그 결과 ‘서울대 계산법’만 따르면 전 세계 주요 선급의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심지어 일부 선급은 서울대 절차를 바탕으로 해석법을 바꾸고 있죠.”

서울대가 슬로싱 실험의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것도 역시 10여 년간 슬로싱 연구에 매진해온 김 교수 덕분이다. 그의 연구실이 있는 42-1동은 거대한 슬로싱 실험 시설이기도 하다. 영국의 로이드 선급재단에서 김 교수의 연구를 전폭 지원했기에 가능했다.

한때 지원자가 적어 걱정을 샀던 모교 조선공학과 대학원 진학률도 최근 1.7 대 1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산업계와 학계 모두 낙관해도 될까. 그러나 그는 “희망과 위기가 공존한다”고 했다. “희망이라면 조선업의 분야가 과거보다 다양해졌다는 겁니다. 예전엔 유체역학과 구조역학으로 양분돼 있다시피 했지만, 요즘엔 생산, 친환경, 디지털, 인공지능까지 조선공학의 영역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어요. 위기는 중국의 성장입니다. 일본이 50년 가까이 세계 1위를 했는데 우린 2000년에서 2010년까지 고작 10년간 1위를 하고 중국에 따라잡혔습니다. 생산력으로 따라잡혀도 기술로 버텼는데 최근엔 그 격차도 굉장히 줄었고요.”

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선 한국이 아직 세계 1위를 내주지 않았지만, 그 또한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 인재 양성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에서 나오는 조선공학 논문 수가 한국의 20배입니다. 양만 많은 게 아니라 질도 좋죠. 중국엔 ‘국가중점실험실(Key Laboratory)’이란 시스템이 있어 정부가 대학 연구실을 전폭 지원합니다. 조선공학에서 서울대와 경쟁 관계인 상하이교통대학은 우리 수조의 2배가 넘는 300m짜리 수조를 갖고 정부나 기업체가 협약을 맺어서 50년 동안 운영 경비의 50%를 줘요. 우리가 그렇게 하면 난리가 나겠죠. 대형 실험시설이 있어도 운영 제도가 너무 미흡합니다.”

한편으론 “조선업이 힘들고 어려워도 제 역할을 해오는 동안 학계는 사실 그 우산 아래 있었다”는 반성도 했다. “서울대를 비롯해 많은 국내 조선공학과들이 학생을 배출하고 취업도 시켰지만, 학문적으로 리더십을 가질 정도의 우수한 역량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동경대의 경우 일본 조선업이 쇠락하면서 학과는 없어졌어도 여전히 조선해양 커리큘럼을 갖고 인재를 뽑아요. 그 사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주요 요직에 들어가서 국가적인 비전을 제시해 주는 그룹이 되거든요. 작은 조선소도 없는 영국조차 여전히 조선 분야의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정작 세계 1위를 다투는 우리나라는 그런 리더십이 없습니다.”

서울대에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한국의 조선업 생태계가 좋아지려면 중소 조선소, 기자재 산업, 해운 쪽도 가고 정부 가서 정책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선배들이 그런 다양성 못 보여준 것 같아요. 약화된 리더십을 극복하는 건 비단 학교만의 숙제가 아니라 조선해양산업 전체의 숙제입니다. 서울대 조선공학 인재들부터 리더십을 회복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