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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2025년 6월] 오피니언 논단

‘세상을 바꿀’ 혁신인재를 위하여

논단-김영오(토목85)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세상을 바꿀’ 혁신인재를 위하여


김영오(토목85)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서울공대, 다음 50년 이끌 인재상
“세상에 없는 질문 던지는 청년”
초우수 해외 인재 편입 유치 강화
국가차원서 1000명 인재 육성도
지난 1년 학장 직책을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서울공대와 서울대학교 인재상, 그리고 넓게는 대한민국 인재 양성 정책을 고민하게 됐다.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의대 선호 현상과 이공계 기피라는 구조적 문제부터, AI와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국제적인 기술 패권 경쟁, 그리고 최근의 정권 교체까지,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인재’라는 키워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기술 혁신이 매일 같이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인공지능이 산업은 물론 인간의 사고와 창조의 영역까지 대체하는 시대. 이러한 변혁 속에서 서울공대가 걸어온 ‘교육입국’과 ‘공업입국’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시금 본연의 사명감을 일깨워 준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다음 50년을 이끌어갈 인재상을 새롭게 정의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다. 이에 서울공대가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세 가지 인재 양성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세상을 바꿀 서울공대 혁신인재 육성사업’이다. 서울공대는 단지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젊은이를 찾고자 한다. 2학년 이상 학생 중 40명을 선발하여 연 2000만 원(월 100여만 원 생활비+등록금)의 장학금을 지원하며, 이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에게는 1000만 원의 연구비를 별도로 지급해 학부 2학년부터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진행하도록 유도한다. 장학생 선발은 단순히 입학 성적이나 1학년 학점에 의존하지 않고, ‘혁신인재 평가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세상에 없는 질문’, ‘심층 몰입 토론’ 등의 획기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선정된 학생은 졸업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받되, 철저한 중간평가를 거친다.

두 번째는 ‘초우수 해외 인재 지원사업’이다. 글로벌 다양성과 산업 인력 연계를 동시에 고려한 이 사업은,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의 유망한 대학생을 서울공대 2, 3학년으로 편입 유치하는 것을 목표한다. 장학금과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여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관련 기업의 장학금 출연도 용이해질 것이다. 이는 서울공대는 물론, 대한민국의 인적 자산을 다변화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대학원 석사과정에서의 ‘무전공(정확히는 학생설계전공)’ 도입이다. 서울대학교는 2015년 국내 최초로 자유전공학부를 시작하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학생설계전공’이 도입됐으며, ‘첨단융합학부’ 및 ‘학부대학’이 차례로 설립되어 학부과정에서의 ‘융합인재’ 육성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응용학문 중심으로 전문지식(Domain Knowledge)이 부족한 학부 졸업생을 양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과대학에서는 ‘공학전문대학원’에 무전공 개념인 ‘학생설계전공’을 도입하여, 공학사로 4년간 전공지식을 배운 학생들이 석사과정에서 자기주도형 커리큘럼 설계를 통해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창출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에 AI 기술을 접목한 학생은 졸업 학위기에 ‘AI반도체 학생설계전공’이라고 명시된다. 이는 미래에 필요한 소위 ‘양손(Ambidextrous) 인재’를 키우는 제도다.

이러한 대학 차원의 실험을 넘어서 국가 차원의 과감한 인재 육성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한국형 천인계획’이라 부르고자 한다. 매년 이공계 신입생 10만 명 중 단 1000명을 선발하여 ‘세상을 바꾸는 국가 혁신인재’로 키우자. 이들 인재는 선행학습으로 왜곡된 대입과는 무관하게 선발되어야 한다. 국가 주도의 ‘혁신인재 평가센터’를 설치해 획기적인 선발 방식을 개발하고 이들의 평가를 전담하게 한다. 또한 이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매년 신진 박사 200명을 수용할 ‘AI혁신연구원’을 설립하고 최소 5억원 이상의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자.

향후 5년간 전임연구원 1000명의 조직으로 이 연구원을 키우고, 국내외 석학 20여 명을 3년간 초빙해 어우러지게 하자. 이러한 국가 주도의 연구원은 AI 분야뿐 아니라 ‘탄소중립’, ‘바이오’ 분야 등에도 설립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공약 시 산발적으로 제시된 100조, 200조 규모의 AI 인프라 예산에 비하면, 100분의 1도 들지 않을 규모의 계획이다.
한 명의 인재가 열 개의 기업을 살리고, 백만 명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 우리는 그 한 명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길러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구체적인 실행이 절실하다. 공학이 좋아 관악으로 모여든 우리 학생들의 눈빛을 보며, 나는 오늘도 확신한다. 그들이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세상을 열어줄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