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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2025년 6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 10개, 서울도 10개

관악춘추-임석규(언어84)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10개, 서울도 10개


임석규(언어84)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서울대를 10개나 더 만든다니, 일단 귀에 확 들어와 꽂힌다. 한때 유행한 ‘서울대 폐지론’을 뒤집는 역발상이다. 서울대를 없애자는 논리가 하향 평준화에 닿는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상향 평준화를 향한다. 지난 대선에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몇 안 되는 정책 가운데 하나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다. 이번에 처음 나온 반짝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다듬어진 공약이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요한 교육 공약이니, 새 정부가 실현 방안을 무게 있게 검토할 것이다.

핵심은 9개 지방 거점 국립대(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에 예산 지원을 크게 늘려 서울대 수준으로 경쟁력을 높이자는 거다. 학생 1인당 투여 교육비를 보면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2023년 기준 서울대는 6059만원, 거점 국립대 평균은 2450만원이었다. 서울대의 절반을 밑도는 금액이다. 해마다 3조원 안팎을 지원하면 이를 서울대의 70~80%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셈법이 이 정책의 배경이다.

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서울 주요 대학으로 몰리는 ‘병목현상’을 완화할 수 있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예상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재원 조달 방안도 문제지만, 왜 국립대만 지원하느냐는 사립대들의 반대 목소리도 있다. 재정 지원을 늘린다고 9개 지방 거점대가 뚝딱 서울대가 되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중증 환자에게 내리는 긴급 처방에 가깝다. 환자는 고사 직전의 상황에 내몰린 지방대,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이다. 이 약, 저 약 다 써봐도 좀처럼 차도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한 번 해보자는 절박함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야당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았으니, 약점은 보완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된다. 연간 3조원이 적은 돈이 아니지만, 지역을 살리는 데 보탬이 된다면 동의하는 여론도 높아질 것이다.

효과를 높이려면 독립적인 교육정책이 아니라 산업, 도시, 행정 정책과 병행하는 게 좋다. 대학 수준을 높이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지역에서도 서울과 비슷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로만 향하는 학생들의 행렬을 멈춰 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서울 같은 도시 10개 만들기’를 병행해 추진해야 한다.

서울대가 이 정책에 팔짱만 끼거나 수세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없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은 공개적으로 찬성 의견을 나타냈고, 이 정책의 실질적인 기획자로 참여한 서울대 교수도 있다. 서울대가 인적·물적 자원을 지역 대학과 공유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출범시킨 대학연대 지역인재양성 사업단을 창구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정책이 서울대에 대한 지원 감소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이 점을 확실히 한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서울대가 소매를 걷어붙여도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