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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2025년 6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연희동 그 칼국수가 관악에도 문 열었습니다”

국물 맛으로 승부하는 ‘연희국시’ 하루 종일, 끓이고 또 끓인다
“연희동 그 칼국수가 관악에도 문 열었습니다”


김성윤 (기계설계88) 연희국시 관악산점 대표

국물 맛으로 승부하는 ‘연희국시’, 
하루 종일, 끓이고 또 끓인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을 나와 관악산역 인근 한적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속 별장을 연상케 하는 식당 하나가 나타난다. 관악문화재단 건물에 입점한 김성윤(기계설계88·사진) 동문의 ‘연희국시’(연희동 칼국수). 이 식당은 단출하지만 깊은 맛으로 찾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 식당이다.

40년 전, 연희동의 단칸방에서 시작된 이 집은 당시 가족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부모가 시작하고, 형제들이 함께하던 그 식당은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가족 모두의 일상이 되었고, 이제는 김성윤 동문이 관악산역 3호점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한동안 연구와 강의, 기업 자문 등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식당과는 멀어졌던 그는, 지난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가족이 40년 넘게 지켜온 가게인데, 우리 세대에서 끝날 것 같더라고요. 내가 힘이 남았을 때 체계를 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이 식당을 다시 체계화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그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장 익숙한 공간으로 향했다. 학생, 연구원, 발전재단 실무자로 오래 몸담았던 관악은 그에게 편안한 땅이었고, ‘연희국시’는 그렇게 관악에 문을 열게 됐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24시간을 푹 고아낸 사골육수의 구수한 향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이 집 육수는 진한 사골의 깊고 묵직한 맛을 자랑한다. 하루 종일 정성껏 끓이는 육수는 오랜 노하우와 집요한 손맛의 결과다. 김 대표는 “직원에게 맡겨선 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며 웃는다. 이 국물은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깊은 농도를 자랑하고, 첫 숟가락에서부터 진심이 느껴진다.

칼국수의 면은 다소 독특하다. 일반적인 칼국수 면보다 얇고 쫄깃해 색다른 식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국물이다. 한우의 깊은 육향이 고스란히 스며든 이 국물은 한 그릇만으로도 속이 든든해진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국물은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강력하다.

곁들임도 뛰어나다. 시원하고 개운한 백김치와 매콤 아삭한 겉절이가 칼국수의 맛을 배가시킨다. “저희 백김치는 발효 과정이 김장김치와 유사해요. 분석해 보니까 유산균 균형이 아주 잘 잡혔더라고요” 어머니가 연구한 발효 방식을 그대로 따른 김치는 걸쭉한 국물과 어우러져 감칠맛을 더한다. 새롭게 추가된 메뉴 ‘사골양지국밥’도 인기다. 진한 사골 국물에 양지의 깊은 맛을 더한 육수를 더해 한층 풍성한 맛을 완성했다.


대표 메뉴인 연희칼국수와 백김치, 겉절이

또 하나의 인기 메뉴는 바로 한우 수육이다. 기름기 적고 담백한 부위만을 사용해 삶아낸 수육은 젓가락만 대도 결결이 부드럽게 찢어진다.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고기의 결 사이로 배어든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감싸며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시간을 들여 만든 진짜 수육이라는 걸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메뉴는 단출하다. 칼국수, 사골양지국밥, 그리고 한우 수육. 하지만, 이 세 가지면 충분하다. 다양한 메뉴를 내놓기보다는, 기본 재료와 철학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식자재 역시 매일 신선한 것으로 준비하고, 재료비를 아끼지 않는다. 일반적인 외식업 기준보다 높은 재료비 비율에도 불구하고, 맛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담겨 있다.

김성윤 대표는 이곳이 단순히 ‘맛집’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린 맛집이 아니에요. 그냥 맛있는 밥집이면 좋겠어요. 편하게 와서 드시고 갈 수 있는 그런 맛있는 밥집” 그래서일까. 이곳은 빠르게 변하는 외식업계 트렌드와는 다른 방향을 걷는다. 변화를 지양하고, 기본에 충실하며, 재료와 정성으로 승부하는 식당이다. 장기적으로는 해외 분점도 구상 중이다.

“이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에요.”
그는 삶의 여러 갈래 길을 지나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가족의 업을 지키기 위해,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유산을 만들기 위해. 관악산 자락의 연희국시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맛있는 국수 한 그릇을 넘어, 시간과 기억, 책임이 담긴 따뜻한 밥상이기 때문이다.
                                                                                                                                         이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