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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호 2005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국립대학교병원도 평준화할 셈인가?

河 權 益 (의학57 ­63) 의과대학동창회 회장

`서울대학교 폐지론'이라는 태풍의 눈이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해 정부에서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구상해 사실상의 서울대학교 폐지를 주장, 논란을 빚더니 최근에는 국회일각에서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을 폐지하고 국립대학병원설치법에 통합하려는 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정부에서 국립대병원의 소관부처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 보건소와 같은 사회안전망 역할을 골자로 하는 공공보건의료정책을 발표해 의료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서울대 의대동창회장으로서가 아니라 평생 의료의 현장을 지켜온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료의 후퇴'가 우려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을 폐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서울대학교 폐지론'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소위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중앙병원을 하나의 지방 국립대병원과 동일시하여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발상은 국가 의료발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오히려 지방 국립대병원을 서울대병원 수준으로 높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국가적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느닷없이 국가 의료발전의 주춧돌을 빼내겠다는 발상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평준화라는 이념에 심취해 무한경쟁시대에 국가 의료경쟁력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며 국민 건강의 하향 평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다.  서울대학교병원이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우리 나라 의학발전을 선도하는 데 크게 기여해 온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지방 국립대병원과 달리 입원환자의 절반이 지방에서 의뢰된 중환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국민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찾아오는 최후의 병원임을 모르는 국민도 없다. 국민건강을 수호하고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의료분야 국가경쟁력을 선도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1만2천여 명의 의대 동문을 대표해 입법발의자에게 묻고 싶다.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의 부처이관 문제도 그렇다. 정부에서 국립대병원을 바라보는 시각과 의료 전반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공공의료확충계획을 보면 국립의료원을 국가중앙의료원으로 확대, 개편하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교육 병원인 국립대병원을 동원해 보건소와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국립대병원 내에 공공의료보건사업부를 설치해 국립대병원을 보건복지부의 감시, 통제권 아래 두겠다는 계획은 누가 봐도 즉흥적이고 비전문가의 정책결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국립대병원과 국립의과대학의 관계는 `교육 - 연구 - 진료'의 분리할 수 없는 기본 연결고리로서 각각의 기능은 의학발전의 삼위일체임을 모르고 탁상에서 정책을 결정한 탓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립대병원을 보건복지부 또는 국가중앙의료원 등의 산하에 두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정부의 계획대로 `공공의료 강화' 방침에 따라 의학교육기능이 분리될 경우 우리 나라 국립 의과대학의 `의학교육의 질'과 `공공의료의 질'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국립대병원의 존재 이유는 의학교육과 연구에 있다. 즉 국립의과대학과 국립대병원의 존재 이유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의학교육, 연구분야의 수월성 추구에 있다. 이러한 목표는 강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학과 대학병원에 부여되는 자율성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며, 강압적이고도 근시안적인 정부의 요구나 규제로 훼손될 수 없음은 역사의 큰 교훈이라 할 것이다.  우리 1만2천여 의대 동문은 의학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선도하는 데 근간이 되고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이 앞으로도 우리 나라 의학교육, 연구, 진료의 선도 기관으로서 의료분야의 차세대 의료인재의 양성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중심 축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