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호 2025년 6월] 뉴스 기획
산 속에 있는 서울대 아시나요?

서울대는 경기 광주 태화산, 수원 칠보산, 전남 지리산, 백운산 등에 학술림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은 남부학술림서 실습에 참여한 학생들 모습. 사진=서울대 학술림
남부·태화산 학술림 가보니…
최근 영남 지역의 산불로 인해 산림 자원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산림은 단순한 녹지 공간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지구 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필수 자원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대학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부속 산림을 관리하고 있다. 관악캠퍼스를 관리하는 본부 학술림을 비롯해 경기도 광주 태화산, 수원 칠보산, 전남 남부 학술림(지리산, 백운산) 등 네 곳에 걸쳐 서울대 학술림이 운영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적인 남부 학술림과 수도권 인근의 태화산 학술림을 직접 탐방했다.
국내 최초의 학술림, 남부학술림
KTX 순천역에서 택시로 20분 남짓. 전남 광양에 위치한 남부학술림 광양사무소는 남부학술림(추산, 연곡, 직전) 전반을 총괄하는 핵심 거점이다.
이곳 구내 수목원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고목들이 울창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1920년 광양 연습림 청사가 설립되고, 1925년에는 162종의 견본수가 심어지며 견본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목조 관사는 지금까지도 원형을 유지한 채 보존돼 있어 학술림의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광양사무소에는 4400여 종의 식물 표본이 보관돼 있지만, 관리 인력과 시설이 부족해 체계적인 보존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박학기 남부학술림장은 “선배들이 남긴 귀중한 자산이지만, 수장고와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남부학술림은 1912년 일본 동경제국대학이 조성한 전남 연습림을 모태로, 1946년 해방 이후 서울대 광양연습림으로 전환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 남단과 백운산 일대에 펼쳐져 있으며, 서울대 학술림 중 가장 넓은 면적(16182ha)과 고도 범위(20~1732m)를 자랑한다. 온대 남부림부터 아고산림까지 다양한 생태대가 공존하며, 이를 바탕으로 식생조사, 야생동물 연구, 수자원 분석 등 폭넓은 학술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1918년부터 시작된 다양한 수종의 시험림은 국내 산림 연구의 귀중한 자산이다. 굴참나무, 편백, 잣나무, 삼나무, 일본잎갈나무 등 100년 이상 성장한 조림지는 현재도 교육과 실험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멸종위기 식물 연구, 산촌 지속 가능성, 생태계 서비스 가치 등 다차원적 연구도 활발히 전개 중이다.
박학기 임장은 “광릉요강꽃, 나도승마, 세뿔투구꽃, 자주솜대 등 멸종식물 4종이 이곳 학술림에 서식하고 있다”며 “이는 학술림의 생태적 가치를 입증하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2023년 사회적가치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부학술림의 생태계 서비스 가치는 약 738억 원으로 평가됐다. 탄소 저감, 산소 생산, 토사 유출 방지 등 다양한 조절 기능뿐 아니라 문화·교육적 가치를 포함한 수치다.
박학기 임장으로부터 남부학술림의 전반적인 현황을 듣고 이성재 박사의 도움을 받아 남부학술림 중 가장 규모가 큰 추산시험장을 방문했다.
광양사무소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추산시험장에는 생활관과 산림교육연구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추산생활관은 99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방과 식당을 갖췄으며, 산림교육연구센터에는 대강당, 중강의실, 세미나실, 교수 연구실, 체육시설 등이 있어 단체 연수 장소로 좋다.
생활관 가까운 곳에는 테다소나무 조림지가 눈길을 끈다. 수십미터를 훌쩍 넘은 키에 곧게 뻗은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임도를 따라 가는 길에 수문시험장에서 수량을 체크하는 학생들도 만났다. 수문시험장은 산림의 수원 함양 영향을 관측하는 곳이다.
임도를 따라 조성된 수목관찰원은 수생원, 진경산수원, 암석원, 난대수종원, 산공정원 등 15개 테마로 꾸며져 걷는 재미를 준다. 관찰로는 6.5km 5개 코스로 조성돼 있으며, 임도는 12.2km 순환 코스로 편백, 삼나무, 일본전나무 등을 볼 수 있다.
산림공학을 전공한 이성재 박사는 “최근 산불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산불 진화를 위해서도 적정한 수준의 임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도심과 자연 만나는 태화산학술림
새벽 5시, 태화산의 숲길은 이미 생명으로 가득했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흙길 위로 다람쥐가 잽싸게 나무를 오르고, 고라니가 멀리서 조심스레 귀를 세운다. 순간 툭, 바위 옆 그늘에서 무언가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검은 뱀이 잔가지 사이로 사라진다. 잠시 긴장이 감돌았지만, 곧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발을 디뎌 산길의 리듬을 되돌려놓는다.
서울대 태화산 학술림은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태화산(해발 664m) 일대에 조성된 교육·연구용 산림이다. 칠보산학술림, 남부학술림과 함께 서울대가 보유한 3대 학술림 중 하나로,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연구림’이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과학부 학생들의 실습지로 활용되며, 일반인의 출입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경계의 숲’이라는 점이다. 고도차에 따라 소나무, 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층을 이루며, 숲은 자연림에 가깝게 구성되어 있다. 단일 수종의 인공림이 아닌, 다양한 식생이 뒤섞인 구조는 조림학뿐 아니라 식물학, 생태학 실습에도 적합하다. 초본식물, 버섯, 이끼류도 다채롭게 분포되어 있어 교육 현장으로서의 활용 가치가 크다.
태화산 숲길은 Y자 형태로 갈라진다. 오른쪽은 약 10.4km로 긴 코스고, 왼쪽은 약 2km로 짧고 경사가 가파르다. 기자는 긴 코스를 선택했다. 오르막을 지난 후 완만한 흙길이 이어졌고, 풀잎 위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산책 도중 야생동물의 흔적도 자주 발견된다. 다람쥐, 고라니는 물론 멧돼지의 흔적도 남아 있으며, 이른 시간에는 뱀이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인적이 드문 숲에서의 조우는 긴장과 경이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도시에서라면 잊기 쉬운 감각들이, 이 숲에서는 살아난다.
태화산 학술림은 단순한 자연휴양지가 아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조림, 산림측정, 임도 설계, 생태계 보전 등을 직접 경험한다. 최근에는 ‘도시 인접 산림 생태계 변화’라는 주제로, 기후위기 속 숲의 기능을 관찰·기록하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연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데이터와 실험의 주체가 되는 현장이다.
태화산은 지도상으로는 서울과 멀지 않지만, 그 숲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최소 두세 시간이 걸린다. 짧은 듯 긴 거리, 가까운 듯 낯선 장소. 이 숲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이자, 학문과 삶이 만나는 경계다.





1. 남부학술림 추산시험장에 조성된 테다소나무 조림지. 2. 추산시험장 생활관과 산림교육연구센터. 99명을 수용할 수 있다. 3.경기 광주 태화산 학술림 생활관. 4. 광양사무소는 4000여 종의 나무 표본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5. 남부학술림의 옛 관사. 문화재로 지정됐다.
개인 휴양 목적으로 방문 어려워
서울대 본부 학술림에 따르면, 학술림 내 생활관은 휴양 목적으로는 이용이 어렵다. 강규석(임학84) 학술림장은 “시설 관리 및 예산 제약으로 인해 학술 목적이 아닌 개인 휴양은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문이나 일반인의 경우 학술 세미나나 단체 행사 목적이라면 일정 협의 후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자체 프로그램은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태화산과 남부 학술림에서는 산책로 및 관찰원 이용이 일부 가능하다.
한편, 서울대가 법인화되면서 학술림 소유권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광양 지역 시민단체 등은 국유림을 법인 서울대가 소유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며, 서울대와 기획재정부 간의 해석 차이도 존재한다. 교육·연구 목적의 활용 범위에 대한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연구시설 설치와 장기적 투자가 제약받고 있는 상황이다.
강규석 학술림장은 “산림 연구는 수십 년간 이어져야 하는 장기적 과제이기에, 임야 소유권이 확보돼야 안정적 운영과 투자, 연구가 가능하다”며, 서울대가 책임 있는 운영 주체로 학술림을 관리할 수 있도록 신뢰를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김남주·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