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호 2025년 5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공론 지킬 책임 맡겨진 서울대
유튜브가 공론장 분탕질 못하게 책임만큼은 서울대인 떠맡길

김창균(경제80-84)
조선일보 논설주간
본지 논설위원
공론 지킬 책임 맡겨진 서울대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불콰한 상태에서 귀가했을 때 논설실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몽롱한 취기 때문일까, 꿈속에서 환청을 듣는 기분이었다. TV를 켜보니 윤 대통령이 “척결” “처단”같은 반세기 전 자취를 감춘 시사용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내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었을 때 오랜 고민없이 답변이 나왔다. “탄핵을 피할 수 없겠는데, 이재명에게 권력을 넘기고 싶었나.”
30년 가까이 정치 현장을 담당해온 언론인 관점에서 윤 대통령이 정치적 자살을 감행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비슷한 업에 종사해 온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광화문 광장에선 전혀 다른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임기 절반도 되기 전에 20%대로 떨어졌던 대통령 지지율이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후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반등했다. 그동안의 정치 상식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현상이었다. 어떤 쟁점에 대한 여론이 60%대 30% 정도로 갈리면 소수파는 입을 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점점 더 여론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는 법이다.
탄핵 반대가 새로운 대세인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온 근원지는 유튜브였다. 계엄은 정당했고 그래서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자신이 듣고 싶었던 메시지를 찾기 시작했다. 반탄 영상을 몇 편 조회하고 나면 다음 번에 유튜브를 열었을 때 비슷한 내용을 담은 영상들이 전면 배치된다. 탄핵 반대쪽으로 여론이 기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탄핵이 기각될 거라고 믿는 지인들로부터 “조선일보가 여론을 잘못 읽고 신문을 만든다”는 항의성 전화도 제법 받았다. 그러다보니 필자마저 “정말 여론이 달라지고 있나” 헷갈릴 정도였다. 탄핵 기각을 확신했던 사람들은 8:0 만장일치 탄핵 인용 결정이 나왔을 때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강력하게 떠받든 것도 유튜버들의 공이 컸다. 유튜버들에 세뇌당한 사람들의 믿음이 하도 강고해서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 정치학자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처음 고개를 들었을 때 강력하게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무책임한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자신들도 믿지 않는 음모론 장사를 한다. 그들의 장난에 사회가 휘둘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줄 책임은 지식인들의 몫이다. 서울대 사람들은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회를 위해서 성가신 부담은 피하려 한다는 비판을 종종 들어왔다. 유튜브가 공론의 장에서 분탕질치지 못하도록 하는 책임만큼은 서울대가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떠맡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