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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2025년 5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개헌, 권력구조를 넘어

소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독일처럼 소수파 참여 보장하면 대통령제 아래서도 연합정치 가능해

임현진(사회67-71)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개헌, 권력구조를 넘어

대전환기 한국의 최대의 과제는 개헌이다.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대통령중심제, 내각책임제, 이원집정제, 책임총리제 등이 거론된다. 1987년 이후 여덟 분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5년 단임제가 지니는 선거전 권력야합, 선거후 권력누수의 결함을 보아왔다. 포풀리즘적 팬덤정치가 정책경쟁을 대신하여 온갖 비방과 모함으로 국민을 갈라친다.
특히 5년제 대통령과 4년제 국회의원의 선출 시기가 달라 때로 여야가 권부를 나누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를 가져온다. 지난해 겨울 시대착오적 비상계엄 선포도 ‘용산 권력’과 ‘여의도 권력’ 사이의 관용과 절제 없는 극한적 대결의 정치와 무관치 않다. 다수당의 입법독주와 탄핵남발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과 부딪친 결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 13명 대통령, 미국은 15명 대통령, 영국은 19명 총리, 일본은 34명 총리, 프랑스는 대통령 25명과 총리 27명을 두었다. 독일은 Adenauer 14년, Kohl과 Merkel 각기 16년 등 불과 8명 총리만을 가졌다. 영국, 일본은 독일과 같은 내각책임제다. 왜 유독 독일이 정치적 안정에서 돋보일까?
바로 선거를 통해 의회와 정부를 연결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에 열쇠가 있다. 영국, 일본, 미국, 한국, 프랑스 등의 다수제(majoritarian) 정치는 승자독식과 권력독점을 가져온다. 소수의 배제에 따른 다수의 독재가 일어난다. 이와 달리 독일의 합의제(concensus) 정치는 선거 이후 다수파와 소수파가 연정을 구성하여 각료배분과 정책공조를 통해 안정성을 높인다. 한국 사회의 갈등과 균열이 진영대립으로 치닫는 이유도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소수파의 참여를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구조는 장단점이 있다.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 우리의 사회역사적 환경에 맞는 권력구조를 찾아야 한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과반수에 못 미친 불과 0.73% 차이로 대통령이 되었다. 결선투표를 도입하여 국민적 동의 수준을 올려야 한다. 2024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일위대표의 소선거구제 아래 득표율 5.4% 차이로 국민의 힘보다 무려 71석을 더 가져갔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는 특정 정당의 지역독점을 완화하여 다당제의 정착에 유리하다. 하지만 의석분포의 지역교차를 통해 기존 정치엘리트 카르텔을 유지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의 인구감소를 감안하여 중대선거구 형태의 도농복합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구의 축소를 통해 비례대표 의석을 100명까지 늘릴 수 있다. 지금의 1인 2표의 폐쇄형 비례병립제도 독일식 연동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바꾸어 사회경제적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
내각책임제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하여 무조건 대안은 아니다. 내각책임제는 의회주의의 바탕 없이 자리잡기 어렵다. 정치인의 식견과 자질 향상, 수용과 협상 문화의 발달, 아래로부터의 공천제도의 도입, 그리고 직업관료제의 정착이 필수적이다. 정당들 사이의 정책대결이 취약한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는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경유착과 정당담합을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당내 파벌-관료집단-거대기업 사이의 야합으로 총리의 국정운영이 수시로 흔들린다.
내각책임제의 경험이 있는 곳에서 가능한 이원집정제는 아직 시기상조다. 분점정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이 외치, 총리가 내치를 맡는 분권제는 취약점이 많다. 프랑스에서 보듯 서로 다른 정당의 대통령과 총리가 동거정부를 구성할 때 이원집정제는 노선차이로 인해 국정난맥과 혼란을 자초할 수 있다. 독일의 내각책임제와 비교하면 프랑스의 이원집정제는 정부의 안정성과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현행 대통령중심제에도 권력분산의 측면에서 내각제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하여 대통령과 책임을 공유하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내각책임제로 가기 전 의회주의의 제고를 위해 필요한 책임총리제다.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제를 도입하여 통일한국을 준비하면서 4년제 대통령의 중임을 포함하여 부통령제의 신설을 검토할 수 있다.
전세계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가 한국이다. 국민의 90%가 정당이 다르면 서로를 부정한다. 연애도 결혼도 기피한다. 이른바 ‘두 개의 국민’이 정서적 내전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최악의 진영대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영미식 다수제 정치보다 유럽식 합의제 정치로 민주주의 운영을 바꿔주어야 한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도 ‘연합정치’가 가능하다고 본다. 공동정부, 통합정부, 연합정부의 형식으로 관료배분, 각료공유, 정책협치를 함으로써 미래 한국의 생존과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