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호 2025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는 일

하임숙 (영문91-95) 채널A 전략기획본부장/한국여성기자협회장/본지 논설위원
2001년 2월의 일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에는 눈폭탄이 터져있었다. 낭만이고 뭐고 발목 위까지 쌓인 눈으로 일어난 교통대란을 뚫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했다. 나중에 기록으로 알게 된 일이지만 서울에는 하루에 23.4cm의 눈이 쌓여 32년 만에 2월 최대 적설량 기록이 깨졌다.
당시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였던 나는 어찌어찌 겨우 출근을 했고, 늘 그랬듯 정신없는 일과를 보냈다. 그때 신문사 경제부 기자의 저녁은 회사에 다 같이 모여 가판시장에 나온 내일 자 신문을 체크하고 필요할 경우 기사를 고쳐 쓰거나, 자신의 단독 기사를 자축하는 것으로 대체로 마무리가 됐다. 외부 출입처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낸 많은 동료들이 회사로 복귀해 ‘물먹은’ 기사는 없는지 점검하는 일은 업무이기도 했지만 소소했던 하루의 일과를 서로 나누는 친교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이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부장이었던 모 선배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폭설에 대한 여러 기사 중 서울시가 구비해둔 제설제가 턱없이 부족해 교통대란이 더 크게 일어났다는 기사를 보고 “왜 이렇게 준비성이 없나”라는 불평을 터뜨린 후였다. 당시 부장은 “폭설은 비정기적으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대비를 안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사랑방의 사소한 수다를 떨었던 자연인 하임숙이 경제부 기자답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 같아 한동안 부끄러웠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이제 경제적인 관점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때까지만 해도 드물었던 기상 이변이 이제는 상수화됐기 때문이다. 이상 기후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은 과비용이 아닌 생존과 효율성의 문제가 됐다.
전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지구촌 곳곳에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이 브라질과 아프리카를 강타했고, 가뭄은 나라를 가릴 것 없이 대형 산불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달 치 비가 하루에 몽땅 퍼붓는 극단적 폭우는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해 귀한 목숨을 잃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예상을 뛰어넘는 폭설은 더 자주, 더 길게 발생하고 있다. 한때는 교과서나 정부의 분석 자료 속 단어로 생각했던 ‘기후 위기’가 이토록 빨리 현실로 파고들 줄은 진정 몰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달만 해도 일주일새 겨울과 봄과 이른 여름이 공존하는 기묘한 날씨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기후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한쪽 방향으로만 달려온 개발과 성장의 역사에 자연이 값비싼 청구서를 내밀었다고 설명한다.
도전이 있으면 응전이 있는 법. 인류가 자연의 반격에 이대로 무기력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상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다행히 이미 시작됐으니 말이다. 요즘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는 마법의 단어 인공지능(AI)이 이미 기후위기 대응에도 활용되고 있다 한다.
예를 들어 빙하가 녹는 정도를 예측하는 ‘아이스넷’과 홍수를 예측하는 ‘플러드허브’같은 서비스는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조기 경보를 제공한다. 영국 스타트업 파인피크(Pinepeak)의 산불 예측 기술은 위성 데이터로 훈련된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제트엔진 연구를 위해 개발한 최첨단 물리 기반 모델링을 결합해 산불 발생 가능성을 최대 90% 정확도로 예측한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서비스가 개발됐다는 소식은 못 들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런 연구를 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1년에 한 번 잡은 대학 동문들의 야외 활동이 폭우 때문에 취소되거나 5월 연휴기간에 하루 날을 잡아 놀이동산에 가기로 한 자녀와의 약속을 속절없이 어겨야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