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호 2025년 5월] 뉴스 모교소식
학생회관 터줏대감 이분들을 아시나요?
안경점·토스트가게·약국… 오랫동안 학생 곁 지켜와
학생회관 터줏대감 이분들을 아시나요?
안경점·토스트가게·약국… 오랫동안 학생 곁 지켜와
서울대학교 캠퍼스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있다. 학생은 바뀌고, 건물은 달라졌지만 교내를 지키는 사람들. 그곳엔 같은 사장, 익숙한 인사, 오래된 기억이 쌓여 있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지켜왔을까. 서울대 구내의 ‘터줏대감’들을 만났다.
서울대학교 구내안경부 권영학 사장
40년간 시력 책임져온 안경사
학생회관에 위치한 안경점, ‘서울대학교 구내안경부’의 권영학(66) 사장은 1979년, 서울대 교정에 처음 들어섰다. 그로부터 40여 년, 입찰에서 밀려난 6년을 제외하곤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의 눈을 책임져왔다. “2021년에 다시 들어왔을 땐, 그냥 마음이 편했어요. 학생들 대하는 것도 좋고,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구나 싶더라고요.”
그는 유쾌한 농담도, 반복되는 렌즈 조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은 안 맞는 걸 알아도 그냥 쓰고 다니는 학생이 있어요. 그런 거 보면 속이 상하죠. 안경은 눈의 일부처럼 쓰는 거니까, 제대로 맞춰야 해요.” 권 사장은 안경과 렌즈에 대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안 밀린다고 자신한다. “의사든 누구든, 이 분야에선 제가 더 잘 알죠. 진짜 실력은 현장에서 나오는 거예요. 저는 수천 명을 상대하면서 데이터를 몸으로 축적했어요.”
서울대에 들어오기 전, 그는 종로의 대형 안과 병원에서 근무했다. 하루 400~500명의 환자가 찾던 곳. 전직 대통령, 장차관, 안기부장까지 내원하던 병원이었다. “실수 하나가 큰일로 이어질 수 있는 자리였죠. 긴장감 속에서 치밀하게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밴 거예요. 그때 쌓은 기술이 지금도 다 쓰입니다.”
서울대에서도 그 전문성은 그대로다. “렌즈 하나 잘못 맞추면 생활이 불편해져요. 확신 없는 조언은 안 해요. 그게 신뢰죠.” 기억에 남는 학생으로 신입생 중 한 명을 떠올렸다. 유치원 시절부터의 시력 변화와 도수, 불편했던 안경 모양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너무 커서 교정이 힘든 ‘비대칭시력’으로 불편함이 컸다. 권 사장은 “기억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어요. 과거 경험만 고집하면 지금 눈에 맞는 안경을 찾기 어렵죠”라며 새 출발을 제안했다. 처음엔 어지러움을 호소했지만, 미세한 차이를 조정하며 끝내 최적의 렌즈를 찾아냈다. “학생이 저를 믿어줬고, 저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
서울대 교수들도 여전히 그의 손을 거쳐 간다. 전직 총장은 물론, 학부 시절부터 단골이던 학생이 교수가 돼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오래 본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안경이 맞는지 알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제 말을 믿어요. ‘이건 안 어울린다’, ‘이건 오래 못 쓴다’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죠.” 사법시험에 합격한 단골 학생이 찾아와 명함을 건네며 “저 찾지 마세요”라던 기억도 선명하다. “변호사 찾을 일 없이 평안하시라는 인사였어요.” 졸업 후 결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는 이들. 권 사장은 그 과정을 가족을 지켜보듯 함께 하고 있다.
렌즈를 구입하러 교내 안경점을 찾은 신서윤(재료공학 25) 학생은 “학교 밖 매장보다 저렴하고, 친절하세요. 추천해주신 제품이 딱 맞아서 신뢰가 생겨 꼭 여기로 와요”라고 말했다. 화려한 외부 상점 대신 이곳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자신의 눈을 잘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과거에는 후생관이라는 이름 아래, 양품부, 컴퓨터부, 제화부 등 다양한 상점들이 백화점처럼 모여 있었다. “운동회도 같이 했어요. 각 상점끼리 팀 짜서 배구, 족구하고, 끝나면 차도 마시고. 지금은 각자지만, 그때는 진짜 공동체였죠.” 권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어요. 남은 건 몇 명뿐이죠. 그래도, 그 시간이 서울대를 특별하게 만든 거예요.”
안경점 바로 옆, 핸드폰 매장 ‘메이저텔레콤’의 정희자(63) 사장도 16년간 캠퍼스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팬데믹 이후 유입은 줄었지만, 그는 여전히 익숙한 얼굴들과 하루를 시작한다. “2학년이 1학년 데려오고, 신입생 생기면 또 데려오고, 한창때는 액정 필름 붙이러 하루에 열 명 넘게 왔어요.” 정 사장은 “서울대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 좋고! 그중에 사람이 제일 좋아요”라며 웃는다.

'메이저텔레콤'의 정희자 사장, 토스트가게 'S라운지'의 홍성분·이정섭 사장
토스트 사장 매일 새벽 6시 출근
학생회관 2층에 자리한 토스트 가게 ‘S라운지’의 이정섭(71)·홍성분(64) 부부는 새벽 6시에 문을 연다. 올해로 24년째, 아침마다 같은 자리에서 학생들을 맞고 있다. 이곳은 작년 7월까지 ‘라운지스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리모델링을 거쳐 ‘S라운지’로 바뀌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토판집(토스트 파는 집)’으로 통한다.
하루 토스트 300개를 넘게 팔던 시절, 시험 기간이면 줄이 복도를 돌았다. “아침 공복에 먹을 수 있게 하려면 일찍 열어야죠. 요즘은 줄은 덜 서도, 단골이 꾸준해서 괜찮아요.” 남편 이정섭 사장이 주문을 받고 굽는 동안, 아내 홍성분 사장은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토스트를 사가는 학생도 있다. “이름을 묻지 않아도 알아요. 표정만 봐도 그날 컨디션이 보여요.” 이들은 학생 하나하나를 이름 대신 표정과 기억으로 담는다. 어떤 학생은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꼭 선물을 챙겨왔다. “작은 과자 하나라도 건네면서 ‘사장님 덕분에 한국이, 학교가 그리웠어요’라고 인사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참 고마운 일이지요.”
토스트 가게는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잠깐 문을 닫는 동안,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폐업을 막아달라’는 글이 줄을 이었다. “학생들이 꽃도 갖다주고, 먹거리도 챙겨주고, 문 닫지 말아달라는 글을 정말 많이 써줬어요.” 그 인연이 가게를 다시 열게 한 힘이 됐다.
코로나로 캠퍼스가 텅 비었을 때도 문을 닫지 않았다. 하루 몇 명 오지 않는 날에도, 매일 문을 열었다. “학생이 딱 한 명만 와도 고마운 일이었어요. 단골 몇 명만 있어도 괜찮다 싶었죠.” 이정섭 사장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장사보다 학생들과 맺은 인연이 먼저였다.
이들은 단순히 빵을 굽는 사람이 아니다. 토스트를 들고 학생회관 계단을 내려가던 학생이 울상을 지으며 돌아왔을 때, 아무 말 없이 새 토스트를 건넸다. “자식 같아서요. 그런 상황이면 새로 주는 게 당연하죠.” 정희자 사장도 그 장면을 기억하며 말했다. “그게 오래가는 이유예요. 그냥 장사꾼이었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이정섭 사장은 손님의 반응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살핀다. “버터를 줄이면 느끼함이 덜하니까. 학생들이 많이 먹고도 속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채식이나 알레르기 식단을 따지는 학생도 늘었다. “계란 안 먹는 친구 있으면 빼드려요. 이런 것도 시대 흐름이죠.”
학내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베이커리 매장이 입점하고, 오전 시간대 손님이 줄어든 지금도, 그는 토스트를 만들 때마다 같은 마음을 담는다. “맛보다 중요한 건 정성이에요. 많이 팔고 싶은 마음보다, 매일 좋은 마음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의 손끝은 여전히 빠르고 정확하다. “나이 들어도 손님이 끊기지 않는 건, 음식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 아닐까요.”
이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같은 자리에서 학생들을 기다린다. 캠퍼스가 바뀌고, 사람도 바뀌지만, 그들의 토스트엔 언제나 익숙한 온기가 담겨 있다.
학내 약국 권숙희 약사
24년 학생 곁 지킨 약국
학생회관 1층의 약국 역시 2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문을 연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응급약이나 감기약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약사님의 정중한 인터뷰 고사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순 없었지만, 환자들을 조용히 맞이하는 그 공간은 말보다 오래된 시간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멀리 떨어진 113동 동원관 1층에는 ‘신영만물’이라는 이름의 도장집도 있다. 도장, 열쇠, 도어락, 명함 인쇄까지 다양한 일을 해내며 4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온 가게다. 정갈하게 정리된 유리 진열장과 묵묵히 일하는 사장님의 모습은 말없이 시간을 증명해주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오랜 시간 학내의 세월을 안은 이들에게 아쉬움도 있다. “수십 년을 일해도, 외부인이죠. 보건소도 못 쓰고, 교내 복지 혜택도 없어요. 우리는 계약된 상인일 뿐, 구성원은 아닌 거죠.” 허나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단체 행동 대신, 학생과 교직원에게 고마운 마음을 더 크게 품는다. 그렇게 수십 년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학생은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들어오지만 교내 상점들에는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기술보다 경험, 상품보다 진심, 서비스보다 신뢰. 종합화 50주년, 서울대학교는 바뀌지만, 그 안의 일부는 그대로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일부가, 이 캠퍼스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송해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