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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2025년 5월] 문화 신간안내

평화의 섬 제주, 비극의 섬 제주

화제의 책

제주 바다의 슬픈 역사 권무일(철학64-68) 역사평론가 평민사

한반도 남단의 푸른 섬, 제주. 오늘날 평화와 관광의 섬으로 불리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주 바다는 피와 눈물의 바다였다. 권무일 동문은 신간 <역사 평설: 제주 바다의 슬픈 역사>를 통해 개항부터 을사늑약까지 30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과 이에 맞선 제주도민의 저항을 생생히 복원한다.

제주는 예로부터 수천 년 동안 독자적인 정체성과 문화를 간직해온 섬이었다. 천년 탐라국 시대에는 독립 왕국으로 존립했으며, 고려와 몽고의 통치기조차 성주 체제를 유지한 채 자율적인 운영을 해왔다. 그 기반은 중앙의 한라산과 사방의 무변대해, 그리고 풍요로운 어족 자원이었다. 전복, 해삼, 멸치, 해초에서부터 방어, 갯장어, 고래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바다는 그 자체로 주민들의 삶이자 생존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제주 바다는 치욕의 바다로 전락했다.

일본은 개항 이후 각종 불평등 조약을 통해 조선 해역에 어로권을 확보하며 제국주의적 침탈을 감행했다. 특히 1883년 체결된 ‘조일통상장정’에는 일본 어민의 조선 해역 조업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됐고, 이를 빌미로 수백 척의 일본 어선들이 제주 바다로 몰려왔다. 그들은 머구리배(잠수기 어선)를 동원해 해녀보다 훨씬 많은 전복, 해삼, 해조류를 채취했고, 이는 제주 어장을 황폐화했다. 제주 바다는 순식간에 ‘황금어장’에서 ‘텅 빈 바다’로 변해갔다.

도민들은 상경 투쟁과 민란을 통해 항의했다. 특히 ‘김지의 난’으로 불리는 무장 저항은 제주성을 장악하고 일본 어선을 공격하는 등 강도 높은 저항으로 이어졌으며, 이에 일본은 군함을 파견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조선 정부는 고종의 명으로 이규원을 제주 목사로 파견했으나, 일본의 외교적 압력에 의해 곧 해임되고 만다. 이후 일본 어민들은 제지 없이 상륙해 어막을 짓고 장사를 하며 제주를 사실상 점령했다.

책은 단순한 침탈의 기록을 넘어서, 제주도민들의 저항을 민족운동의 출발점으로 재조명한다. 바다를 지키려는 노력은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자, 주권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의 무능과 탐관오리의 부패는 이들을 외면했고, 제주 바다는 결국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권무일 동문은 제주 바다에 대한 연구가 기존 역사학계에서 소홀히 다뤄졌음을 지적하며, 이 책을 통해 제주 해역의 비극과 그 저항을 정사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권 동문은 책에 동원된 원자료를 읽으려고 80세에 제주한라대 일어과에 입학해 젊은이들과 함께 일본어 공부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서문에서 “구한말 서구열강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우리나라를 두고 서로 각축을 벌일 때 당대의 위정자들이 국제정세와 강대국의 야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정쟁만 일삼았던 시절, 백성들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도 민족정기를 꿋꿋이 이어온 지혜롭고 강인한 민족이기에 오늘날 혼돈의 시기에도 더욱 뚜렷한 국가관을 가질 것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권 동문은 2008년 <문학과의식>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해 그동안 역사소설 <의녀 김만덕>, <말,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 평설 <이방익 표류기> 등을 썼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