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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025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30년 만에 이룬 꿈

추억의 창 - 조미구 (식품공학 93-98) 작가

조미구 (식품공학93-98)작가

30년 만에 이룬 꿈

추억의 창
조미구 (식품공학93-98)작가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93년도에 차석으로 합격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3학년 1학기까지 열심히 공부했고 학교생활을 잘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95년 여름방학에 두 달 동안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주로 LA에 사시는 외삼촌과 친구 집에 머물렀고 미국 중부의 라스베이거스, 동부의 뉴욕까지 지인들의 도움으로 여행을 다녀왔으니 두 달 동안 미국 동부, 서부, 중부를 다 구경한셈이다. 그런데 미국 여행을 다녀온 후에 다시 대학에 다니려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전공과목들은 모두 난이도가 높았고 밤새워 실험하는 과목들도 있었다. 우리 과 친구들은 모두 대학원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미국 여행을 다녀오느라 너무 무리를 했는지 결국은 몸이 아파서 한학기를 휴학하고 말았다. 96년 봄이 되었다. 94학번 후배들과 3학년 1학기 수업을 다시 들을 수도 없고 계속 한 학기를 더 휴학할 수도 없이 애매한 상황이 됐다. 나는 결국 93학번 친구들과 4학년 1학기 수업을 같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었더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건강 상태도 매우 안 좋았다.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기말고사를 봤는데 대부분의 과목을 백지로 내고야 말았다.

기말고사 마지막 과목 시험을 보는데 내가 백지로 시험지를 내자 교수님이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나를 조용히 따로 부르시더니 공부하는 게 어렵냐고 하셨다. 건강이 안 좋아서 잘 이해도 잘 안 가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이미 내가 작년에 몸이 안 좋아 휴학했던 것을 알고 계셨다. 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서 다니는 줄 아셨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아시고 놀라신 것이다. 그 날이 방학하는 마지막 종강 날이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내가 그 학기를 수강하지 않은 것으로 휴학 처리를 해주셨다. 그래서 그 학기 등록금을 다음 학기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다. 교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다면나는 D와 F로 가득한 성적표를 받고 한 학기등록금을 소진 했을것이고 그렇게 낙제한 과목들을 모두 다시 등록금을 내고 재수강 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교수님 덕에 새로운 학기를 새로운 기회로 맞이하게 된 나는 96년 2학기부터 94학번 후배들과 3학년 2학기 과목들을 들으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다니게 되었다. 97년에도 4학년 생활을 잘하고 98년 2월에 졸업했다. 종강 날 휴학처리를 해주셨던 교수님과 몸이 아파 고생하던 나를 여러모로 도와줬던 같은 과 친구들의 도움과 응원,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내가 그 어려웠던 대학 생활 후반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23)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대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 승승장구했던 나에게 긴 터널과 같이 크나큰 어려움의 시간이 있었던 것은 나를 연단하시고 더욱 크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고 50이 넘어 이제 깨닫는다. 그 당시에 IMF여서 취직이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대졸 공채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서 대기업에 입사하고 16년동안 근무했다.

목회를 하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역을 도와달라고 하여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몇 년간 살았다. 그 와중에 아들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하여 독서 논술 지도사, 책 놀이 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따고 아들을 비롯한 동네 아이들을 모아 독서 토론 논술을 가르쳤다. 공부해 보니 요즘같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독서 토론 논술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가를 알게되었다. 또 책을 읽고 시, 소설, 수필 등의 문학 작품을 쓰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2022년에 나는 소설가가 되었고 2024년에는 ‘아홉 빛깔 사랑’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냈다. 사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은 미국 여행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달 동안의 미국 여행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여행기를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 바쁘게 학교를 다니고 몸이 아프면서 결국에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꿈을 좀 돌아 돌아 작가의 꿈을 30년만에 이루었는데 어쨌든 기쁘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써뒀던 원고들을 책으로 내야겠다고 결심만 하고 결국에는 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이 많이 팔리고 말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달고 책이 한 권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린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오십이 넘어 ‘작가’라는 직업을 갖게되고 조이록북스라는 1인 출판사 사장이 됐으니 100살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할 것이다. 한해에 딱 한권 씩만 책을 낸다 해도 50권이나 낼 수 있는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