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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025년 4월] 기고 여행기

맹사성 고택에서 외암마을까지, 봄과 함께 걸었다

조선시대 600년 고택의 숨결, 동문 50여 명과 떠난 옛집 산책

600년 전통을 지닌 맹사성 고택 앞에서 국토 기행에 참가한 50여 명의 동문들이 단체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조선시대 600년 고택의 숨결동문 50여 명과 떠난 옛집 산책

“이렇게 오래된 집에 아직도 사람이 산다고?”화창한 봄날을 맞아 총동창회는 4월3일 50여 명의 동문들과 함께 충청남도 아산으로 국토 기행을 다녀왔다. 일정은 맹사성 고택을 시작으로, 점심은 솔뫼장터 식당에서 즐기고, 마지막으로 외암민속마을을 둘러 보는 순서였다. 유려한 풍광 속에서 조선 시대 고택과 민속문화를 체험하며 동문들은 다시금 우리 문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맹사성 정신과 철학 깃든 고택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에 위치한 맹사성 고택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격동기를 살았던 인물, 맹사성(孟思誠)의 정신과 철학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이다. 설화산을 등지고 배방산을 바라보는 명당에 자리한 이 고택은, 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의 집에서 유래해 그 손녀 사위였던 맹사성에게 전해졌다는 전승이 남아있다.

전형적인 ‘ㄷ’자형 맛배지붕 구조의 가옥은, 광솔(잣나무류)의 목재가 수백년간 그을리며 묵직한 세월의 무게를 증언한다. 기둥과 도리 사이에는 봉황의 혀를 형상화한 ‘봉설(鳳舌)’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고, 흔히 볼 수 없는 ‘소라 반자’ 천정이 있는 내실은 동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맹사성 고택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정자 구괴정

특히 고택 중심부에서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마당을 지나면 눈에 띄는 정자가 하나 있다. 바로 ‘구괴정(龜槐亭)’이다. 이 정자는 맹사성이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던 공간으로, ‘거북이처럼 느리고 오래 살며, 회화나무처럼 굳건하게 살자’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주위 풍광과 어우러진 이 정자는 방문객들에게 사색과 여유의 공간을 제공하며, 단순한 휴식처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동문들은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사진을 찍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선비 정신의 여운을 느꼈다. 고택앞에는 두 그루의 오래 된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이는 맹사성이 학문에 정진하며 직접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은행나무는 단순한 나무를 넘어 ‘쌍행수(雙杏樹)’라 불리며 고택의 상징적 의미를 배가시킨다. 두 그루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은, 스승과 제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쌍행수는 고택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손 꼽힌다. 이 모든공간을 아우르는 일대는 사적으로 지정된 ‘맹씨행단(孟氏杏壇)’이라 불린다. 맹고불의고택, 구괴정, 쌍행수, 구정지(龜井池) 등이 함께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한 건축 유산이 아닌 조선 지성인의 삶과 교육 철학이 집약된 문화유산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솔뫼장터 식당서 점심을 먹는 동문들

솔뫼장터 식당서 막걸리 한잔

고택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한 후일행은 아산 솔뫼마을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김치찌개와 버섯 전골로 따끈한 점심을 즐겼다. 식사 중엔 동문 한분이 가져온 귀한 산삼주를 함께 나누며 건강과 안부를 묻고, 각자의 추억을 공유하는 화기애애한 시간이 이어졌다.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웃음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가족 같았다.

아산 외암민속마을 전경 사진

광덕산 자락 외암민속마을 들려

마지막 일정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위치한 외암민속마을이었다. 광덕산 자락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조선 중기 예안 이씨 일가가 낙향하여 형성된 반촌으로, 500여 년 전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초가집과 기와집, 물레방아, 열녀문, 장승 등 민속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일부가옥엔 여전히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어 살아있는 민속촌의 풍경을 이룬다. 동문들은 오르막길을 걸으며 장승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연자매 옆에서는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일부 전통양식의 상가는 현재 임대 운영 중이며, 상권에는 권리금까지 형성되어 있다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민속관에는 짚풀 문화제와 예술 공연 관련자료가 전시되어 있었고, 마을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사실도 소개되었다.

9월 25일 충남 논산 윤증고택 기행

탐방을 마치며 동문들은 서로 사진을찍어주고,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며 정을 나누었다. 한 동문은 “어릴적외가에서 보던 장독대가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또다른동문은 “서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을 이렇게 단체로 즐기니 너무 특별하다”고 말했다. 나성숙(미대71-75) 동문은 “기대 이상, 150점짜리 탐방이었다”며 “철저한 준비와 알찬 구성, 그리고 서울대 다운 진지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이런 프로그램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심양섭(인문80-87) 동문은 “항상 책상 앞에만 있다가, 모처럼 선후배 동문들과 함께 봄 햇살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며 “첫 동창회 행사 참여였지만, 다음에도 꼭 다시 함께 하고싶다”는기대감을 밝혔다. 이번 국토문화기행은 9회째로 그동안 화양구곡, 우암 송시열 사적공원, 공주 부여 백제유적지 등을 다녀왔다. 가을 국토문화기행은 9월 25일 충남 논산윤증고택이다. 이윤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