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호 2025년 4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빅디자인 개념 갖춘 크리에이터가 생존한다”
“디자인 통해 세상 바꾸고 싶다” 세계 첫 1인용 골프카 모빌리티 올인

김영세(응용미술70-74) INNO Design 대표
“디자인 통해 세상 바꾸고 싶다”
세계 첫 1인용 골프카 모빌리티 올인
건축·공간 디자인으로 영역 확장
“16세에 디자이너 꿈, 나는 꺼진 적이 없다”
디자이너 김영세 동문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글로벌 디자인 기업 ‘이노디자인’을 설립하고, 삼성·LG·아이리버·아모레퍼시픽은 물론, 평창올림픽 성화봉 디자인까지 이끈 인물. 미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그가 요즘 몰두하는 건 다름 아닌 ‘1인용 전기 골프카(INNO-F1)’다.
이름하여 ‘퍼스널 모빌리티’ 혁명. 골프장에서 영감을 받아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골프카를넘어 ‘1인용 모빌리티’ 시장을 창조하려는 야심찬 시도다. 4월 7일 오후, 리베라호텔 커피숍에서 진행된 두 시간의 인터뷰. 노란 뿔테안경과 블루종 재킷을 걸친 김영세 대표의 목소리는 7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또렷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는 “나는 꺼진 적이 없다”고 말하며, 여전히 디자인과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창조자의 시선을 보여줬다.

평창올림픽 성화대
-요즘 대표님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한동안 언론에서는 뜸하셨던 것 같아서요.
“그 사이에도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평창 올림픽 성화봉과 성화대 디자인, 중앙박물관역 통로 디자인, 위례 심포니아 시니어 아파트 프로젝트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 가장 ‘올인’하고 있는건 ‘퍼스널 모빌리티’예요. 그 출발점이 바로 골프카죠.”
-퍼스널 모빌리티라는 개념이 독특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실리콘 밸리의 팔로알토 골프장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보통 미국의 경우 2인용 골프카를 사용하는데, 팬데믹 때 혼자 타고 다녀 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내공에만 집중할 수 있고, 시간도 단축되고요. 1970년대 중반 유학왔을 때 논문 주제가 퍼스널 모빌리티였어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자회사 ‘INNOXONE’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퍼스널 모빌리티의 시작이지만, 이게 산업으로 확장될 거라고봅니다.”

이노 1인용 골프카
-골프장에서만 쓰이는 제품은 아니군요.
“아니에요. 골프장은 시장 진입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에요. 미국에만 골프장이 2만 개가 넘어요. 거기에서 시작해서 점차 다른 1인 이동 수단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지금 세상은 공유보다는 ‘작고 개인화된 이동수단’이 필요해요. 도로는 그대로인데 차는 계속 많아지고 있잖아요. 4차선을 8차선으로 쓸수 있는 방법? 차를 작게 만들면 됩니다. 그래서 1인용 모빌리티가 미래라고 확신해요.”
-디자인이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산업을 여는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정확합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디자인은 더 예쁘게’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거예요. 제가 제시한 개념이 바로 ‘빅디자인’인데, 이는 빅데이터를 통해 빅밸류를 만드는 디자인입니다. 기존의 스몰 디자인, 즉 ‘어떻게 만들것인가’를 넘어선거죠.”'
-대표님의 저서 ‘빅 디자인’도 그런 철학을 담고 있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모교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기증하고 싶어요. 과거 바우하우스 개념에 갇혀 있는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싶었죠. 진짜 디자인은 ‘비즈니스모델’도 디자인 할 수 있어야 해요. 우버, 에어비앤비, 애플, 이들이 성공한 건 전부 디자인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디자인이야말로 산업과 사회를 리디자인하는 핵심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INNOXONE이라는 자회사도 그러한 생각의 연장선인가요?
“이노디자인이 모 회사라면, INNOXONE은 자체 브랜드를 가진 ‘제조에 가까운’ 비즈니스 유닛이에요. 하지만 공장은 없어요. 나이키나 애플처럼, 디자인이 주도하는 시스템이죠. 제조는 외주에 맡기고, 핵심은 디자인에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말하는 ‘디자인 중심의 산업’이에요.”
-퍼스널 모빌리티 외에도 건축 디자인에 도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한미글로벌 김종훈(건축69-73) 회장님과의 인연이 계기였습니다. 강연 자리에서 만나 건축 디자인을 제안받았고, 평소 제 방식대로 디자인해봤죠. 위례심포니아 프로젝트는 시니어 아파트였는데,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노년층의 일상과 삶의 질을 고려해 전체 흐름을 디자인했어요. 커뮤니티 라운지, 식당, 어린이 하우스 등 여러 공간이 조화를 이루며 노인의 일상에 의미 있는 루틴을 제공하죠. 앞으로도 이런 건축 프로젝트들을 계속 할 계획입니다.”
-삼성과의 인연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1992년 봄 삼성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건희 회장님과의 하루 일정 1:1 디자인 강의였죠. 주말이었고 장소는 안양 인근의 승마장이었습니다. 그때 회장님이 저와 대화를 나눈 후 ‘디자인 혁명’을 노트에 적으셨죠. 그리고 실제로 삼성은 바뀌었죠. 이후 저는 삼성의 휴대폰 디자인 프로젝트에 7년간 참여하며 100개가 넘는 특허를 냈습니다. 그 중엔 시장을 바꾼 제품들도 많았고요. 그게 제가 말하는 ‘디자인퍼스트’의 실현이었어요.”
-그만큼 강력한 디자인의 힘을 경험하셨을 텐데요. 현재 한국 기업 디자인 수준은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해요. 사례조사로 시작하는 디자인은 한계가 있어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발상이 먼저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 교육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디자인은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훈련이에요. 융합적사고, 기술과 예술의 연결, 철학적 사고, 그리고 사회적 역할까지 통합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죠.”
-그 말씀은 결국 교육의 문제로 이어지는군요. 후배 디자이너 양성에 대한 고민도 있으신가요?
“많죠. 그래서 제 철학을 담은 책도 쓰고, 공개 강연도 해왔어요.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AI 아바타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저의 사고, 경험, 철학을 담은 디지털 존재를 만든다면, 그걸 통해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다음 프로젝트이자, 후세에 남기려 합니다.”
-디자인을 시작하신 계기와, 젊은 시절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 때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란 책을 보고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그때부터 쭉 한 길을 걸었죠.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도, 학위보다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세우고, 거기서 이노디자인을 시작했죠.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능성과 꿈이 있었어요. 밤 낮 없이 일했죠. 초기에는 컨설팅 회사로 시작했지만, 점점 제가 생각한 디자인의 역할이 확장 되면서 지금의 방향으로 온거예요.”
-그 긴 여정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죠.
“맞아요. 저는 지금도 꺼진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단지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제품 디자인에서 건축 디자인으로, 다시 모빌리티와 도시 디자인으로, 그리고 지금은 AI 디자인과 교육 철학까지. 저는 항상 다음 시대를 보고 있어요. 시대가 바뀌면 디자인도 바뀌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바뀐 시대를 이끌어야하는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랍스터버너가 표지로 나온 영국 디자인 잡지
-대표님의 디자인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랍스터 버너’는 지금 다시 나와도 잘 팔릴 것 같은데요.
“랍스터 버너는 제게 굉장히 의미 깊은 작품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 디자인해서 출시했던 이 휴대용 버너는 단순히 제품이라기보다 제 디자인 철학을 담은 상징이었죠. 이동성과 효율성, 아름다움이 모두 결합된 제품이었습니다. ‘디자인이 생활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제 생각을 구현한 첫 사례였어요. 당시 IDEA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영국의 권위있는 잡지 ‘디자인’에서도 표지로 소개됐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부터 동경하던 그 잡지에 제 제품이 실리는 걸 보고 정말 감격했죠. 그작품은 지금도 제 사무실에 걸려 있습니다. 지금 다시 출시해도 충분히 경쟁력이있다고생각해요.”

이노 사옥에 걸린 김민기 동문의 유일한 작품
-김민기 동문과의 특별한 우정도 인상 깊습니다.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대학 시절 민기와 함께 음악을 하며 ‘도비두’라는 듀오로 활동했어요. 민기의 그림 한 점이 제 미국 사무실에 걸려있는데, 그게 유일한 회화 작품일 거예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더 소중해졌죠. 그 그림은 밤 늦게 찾아오면 항상 밥을 차려주시던 우리 어머니께 감사한마음으로 민기가 직접 걸어준 거였고, 지금도제게 큰 감동을줍니다.”
-마지막으로 디자인과 미래 사회에 대한 대표님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이제는 AI 시대입니다. 로봇이 제조를 하고, AI가 기획을 하죠.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창의성과 공감력, 상상력입니다. 저는 앞으로의 사회는인간의상상력이핵심자원이되는시대가 올 거라고 봐요. 그래서 ‘퍼플 피플(Purple people)’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그것이 미래 인재의 모델이에요. 퍼플 피플은 창의성, 기술 이해, 사회적 감수성을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AI를 활용해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거예요.”
* 김영세 동문은
1950년 서울생. 경기고와 모교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 전문회사인 이노디자인을 설립했다.이노디자인은 삼성전자의 ‘가로본능’ 휴대폰,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등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IDEA 어워드에서 금·은·동상을 모두 수상했으며,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어워드 등 국제적인 디자인상을 다수 수상했다.2010년에는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과 성화대를 디자인하여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건축과 1인용 모빌리티로 디자인 영역을 확장 중이다. ‘12억짜리 냅킨 한 장’, ‘퍼플피플’, ‘빅 디자인’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창의성과 혁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미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한국지사는 경기도 판교에 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