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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2025년 3월] 오피니언 학생기자의 소리

재학생의 소리: 옷깃 스치듯 짧아도 인연임을

이규림 대학신문 편집장

이규림
언론정보학20
대학신문 편집장

익숙한 사람과 헤어지는 2월, 새로운 만남을 앞둔 채 설레고 긴장하는 3월 사이. 매년 이맘때면 스쳐 간 인연을 돌아보게 된다. 그중 유난히 만남이 짧았던 어떤 이들이, 내게 인연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사람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2023년 1학기, 미국 교환학생 때 만난 친구들이다. 4개월 만에 헤어졌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교환학생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몇 달 지나면 다시 모르는 사이가 될 사람을 알아가는 데 드는 노력이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차피 잠깐 보고 말 사이이니 깊은 관계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헤어짐이라는 결말을 정해둔 사이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이 있었다. 요르단 출신 친구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며 말을 걸었고, 우리는 종종 밤을 새워 함께 영화를 보는 사이가 됐다. 한국에 관심이 많던 미네소타 출신 친구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 친구 차를 타고 한인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했다.

수업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은 여행을 앞두고 옷을 사려는 나를 차에 태워 쇼핑몰까지 데려다줬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곧 헤어질 사이라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 듯했다.

짧은 미국 생활 끝에 정든 숙소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들과 저녁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한 번에 스치면서 벅찼고 언제 다시 이들을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잠시 머물 곳이라 인연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음을 알게 됐다. 이별이 정해져 있고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사이라도, 같이 나눈 추억이 즐거웠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순간이라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행복을 주고받았다면 누구나 소중한 인연이다.

또 혹시 모른다. 20년을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살다 2023년 봄에 우연히 한곳에서 만난 것처럼 언젠가 어디에선가 우리 마주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