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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2025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혐중 정서

20년전 상해 반일운동 떠올라 배척 대신 포용과 협력 바람직
관악논단 이우탁 논설위원
이우탁(동양사84-88) 연합뉴스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20년전 상해 반일운동 떠올라
배척 대신 포용과 협력 바람직

얼마 전 충격적인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명동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분이 겪은 황당한 일을 다룬 내용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이곳 특성상 중국어로 된 안내판들이 있는데 한 남성이 “여기도 중국에 먹혔냐, 가게 사장도 중국인이냐”며 폭언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인근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점원도 일부 한국 남성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했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중국 혐오 정서가 확산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20년 전 중국 상하이 특파원 시절 겪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2005년 봄,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는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벌어졌다. 4월의 어느날 오전 상하이의 명소 와이탄 광장과 인민광장에서 작은 시위가 시작됐다. 그런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가세하면서 순식간에 1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로 변모했다. 평소 무섭기로 유명한 공안들도 시위대를 방치했다.

반일 시위대는 거리를 휩쓸며 다니면서 일본어 간판이 붙은 식당이나 어학원, 심지어 일본제 자동차들을 무차별로 공격했다. 급기야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시위대의 돌팔매질로 만신창이가 됐다.
시위를 취재하던 외국 기자들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필자도 일본 특파원으로 오인한 일부 시위대에 포위됐으나 한국 특파원 신분증을 보여주자 웃으며 풀어줬다. 그때 일본 특파원들은 모두 한국 특파원으로 ‘위장(?)’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문화혁명 이후 처음이라는 대규모 반일 시위대가 중국 최대도시 상하이에서 다시 벌어진 뒤에는 공산당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배경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기록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혐중(嫌中)’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아다닌다. 특히 비상계엄과 탄핵사태 속에 중국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반중 정서는 가열됐다. 탄핵 반대집회에서 ‘시진핑 아웃’이나 ‘멸공’ 구호가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중국 국적의 한 여학생은 부모님들이 “밖에서는 중국말 쓰지 말라”고 했단다.

미국의 세계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에 대한 반대 정서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일고 있다. 그만큼 중국의 전체주의화는 가속화 하고 있고,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불안하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냉정하고 합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반중(反中)은 반한(反韓)을 부르고 혐중(嫌中)은 혐한(嫌韓)을 부를 수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K컬처를 자랑하는 선진 한국은 배척 대신 포용과 협력을 앞세워야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목과 대결의 언어는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자유를 만끽하는 우리들이 그들과 같을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