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호 2025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소셜미디어가 자극한 인간 본성

김희원(인류89-93) 한국일보 뉴스 스탠다드 실장, 본지 논설위원
소셜미디어가 자극한 인간 본성
내 칼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대체로 자기 진영에 대한 비판이 불만인) 사람들이 나의 소셜미디어 계정에까지 일부러 와서 응징하듯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민에 빠진다.
포털 댓글과 달리 익명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심지어 그들의 계정에 들어가 보면 자녀들과 웃고 있는 사진이나 종교적 신심을 드러내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인간화된 관계를 맺는 것인지 끔찍하다. 이것은 분명 인간 본성의 일면이다. 그리고 나쁜 본성을 자극한 소셜미디어의 문제다.
2015년 미국 레딧(한국의 디시인사이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사자 사냥꾼이 짐바브웨에서 사자 한 마리를 동물보호구역 밖으로 꾀어내 사냥했다는 BBC 단신 기사가 게시된 적이 있었다. 검은 색 갈기로 유명해 세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자였다.
이 글은 사냥꾼을 욕하는 댓글, 수천 명의 추천과 함께 인기 게시글에 올랐다. 언론사들이 추가 기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분노의 물결은 트위터로 옮겨가 쓰나미급으로 커졌다. 사냥꾼의 신상정보가 털렸고 저주의 댓글이 트위터, 페이스북을 집어삼켰다. 곧 그의 집, 그가 일하는 치과에 스프레이 낙서 등 물리적 위협이 가해졌다. 사자 세실을 위한 복수가 한 사람을 무참하게 괴롭히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주변 몇 명의 소동으로 끝났을 일이 전지구적 분노와 공격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건 분명 소셜미디어의 영향이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분노를 촉발하는 콘텐츠를 주로 노출되게 해 더 많은 이용자 참여를 유도한다. 정의 구현이라 착각하는 집단적 온라인 공격은 그렇게 무지막지해진다. 게이트로 불리는 유명한 사건들이 여럿이다.
허황된 주장도 공감 얻으며 번성
더 많은 정보 더 정확한 정보 아냐
내 칼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대체로 자기 진영에 대한 비판이 불만인) 사람들이 나의 소셜미디어 계정에까지 일부러 와서 응징하듯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민에 빠진다. 포털 댓글과 달리 익명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심지어 그들의 계정에 들어가 보면 자녀들과 웃고 있는 사진이나 종교적 신심을 드러내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인간화된 관계를 맺는 것인지 끔찍하다. 이것은 분명 인간 본성의 일면이다. 그리고 나쁜 본성을 자극한 소셜미디어의 문제다.
2015년 미국 레딧(한국의 디시인사이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사자 사냥꾼이 짐바브웨에서 사자 한 마리를 동물보호구역 밖으로 꾀어내 사냥했다는 BBC 단신 기사가 게시된 적이 있었다. 검은 색 갈기로 유명해 세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자였다. 이 글은 사냥꾼을 욕하는 댓글, 수천 명의 추천과 함께 인기 게시글에 올랐다. 언론사들이 추가 기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분노의 물결은 트위터로 옮겨가 쓰나미급으로 커졌다. 사냥꾼의 신상정보가 털렸고 저주의 댓글이 트위터, 페이스북을 집어삼켰다. 곧 그의 집, 그가 일하는 치과에 스프레이 낙서 등 물리적 위협이 가해졌다. 사자 세실을 위한 복수가 한 사람을 무참하게 괴롭히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주변 몇 명의 소동으로 끝났을 일이 전지구적 분노와 공격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건 분명 소셜미디어의 영향이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분노를 촉발하는 콘텐츠를 주로 노출되게 해 더 많은 이용자 참여를 유도한다. 정의 구현이라 착각하는 집단적 온라인 공격은 그렇게 무지막지해진다. 게이트로 불리는 유명한 사건들이 여럿이다.
음모론 또한 고대로부터 존재했지만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세력이 커지는 것이 소셜미디어의 존재 때문이다. 아무리 허황된 주장이라도 소셜미디어에 접속된 수천만 명, 수억 명 중 누군가가 그에 공감하고 호응하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노출되고 또 공감을 얻으며 번성할 수 있다. 오프라인이라면 수십 명에 그칠 신봉자 규모가 수만, 수백만 명으로 확대된다.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40%나 되는 국내 여론은 유튜브에서 만들어진 꼴이다. 2020년 총선 이후 보수 성향 정치 유튜브에서 근거 없는 부정선거 주장이 오래 회자됐다. 그것이 계엄을 정당화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추김, 오보 뉴스와 섞여 폭발적으로 세를 키웠다. 2020년 총선 이후 법정으로 간 부정선거 사건 126건 중 확인된 부정선거가 단 한 건도 없지만, 맹신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음모론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도 않는다. 지금 보수 진영 부정선거론의 씨앗은 김어준씨가 주장한 2012년 대선 부정선거론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제작한 영화 ‘더 플랜’에서 주장한 K값 의혹은 사전투표에서 유독 보수 정당 지지율이 낮다는 의혹과 같은 구조의 오류다. 그러니까 관건은 정치적 위치가 아니라 성찰하는 태도다.
유발 하라리가 책 ‘넥서스’에서 역설했다시피 더 많은 정보는 결코 더 정확한 정보를 담보하지 않는다. 전세계를 하나로 엮은 미디어 기술의 진보는 결코 자유로운 정보 경쟁, 이를 통한 진실의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약 20년 전 디지털 혁명이 본격화하며 신생 언론사들이 생기고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더 치열해졌을 때 나는 이것이 더 많은 언론의 자유, 더 다양한 뉴스의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당황했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가 언론의 문제이고 공론장의 문제다. 분노하며 공감하는 콘텐츠, 우리 편을 연결시키는 콘텐츠에 이토록 강렬한 요구가 있는 한 진실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최초의 유튜브 내란’이라는 12·3 계엄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문제다. 새 대통령 집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