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호 2025년 3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우연이 만든 필연의 금실

고화자 약학63-67 수필가
우연이 만든 필연의 금실
넷플릭스(Netflix)에서 <바튼 아카데미>를 취한 듯 몰입해 본 어느 날, 감동이 너무 커서 혼자 삼키기가 아까웠다. 짐(Gym)에서 옆자리 회원에게 충동적으로 말을 걸었다.
“바튼 아카데미 한 번 보세요.”
다음 날 그녀의 반응이 궁금해 다가섰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답했다.
“주인공이… 폴 지아마티죠?”
순간 멈칫했다. 이 영화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는데, 흐름을 주도하는 건 그녀 였다. 예상치 못한 속도로 대화가 전개되더니, 그녀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주인공이 어느 쪽 눈으로 사물을 보던가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사물을 그냥 ‘본다’고만 생각했지, 어느 쪽 눈으로 보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얼떨결에 “왼쪽이요?”라고 답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른쪽이던데요.”
제자 앙그스가 선생님에게 다가서는 애정의 표시인 그 표현을 그냥 넘겨버린 내가 주의력이 많이 부족함을 자책했다.
영화의 감동이 온전히 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미 한참 앞서 있었다. 마치 <바튼 아카데미>의 주인공 폴 헌험처럼, 나는 피상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떠올랐다. 그의 시선은 너도, 나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단다. 시선에도 결이 있고, 그 속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를 볼 수 있다고….
짐에서의 대화는 예상보다 깊어졌고, 결국 클림트, 에곤 실레, 시대를 뒤흔든 예술과 철학까지 이야기가 흘렀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여인과 나는 결이 같다는 걸. 우연이 빚어낸 필연의 즐거움이랄까. 같은 결을 가진 친구를 만나는 건 하나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은, 사소한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뒤, 그녀가 초대장을 건넸다. ‘비엔나 1900’ 전시회였다. 짐에서 건넨 사소한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어쩌면 모든 의미 있는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영화 이야기에서 시작된 대화가 클림트까지 비약된 나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모든 우연은 필연을 가장하고 찾아온다.” 소통의 금실을 따라, 우리는 그렇게 또 다른 연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