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호 2025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2023년 서기관 사표 내고 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로 화제
관료제 모순 폭로한 첫 책 인기, 가짜 노동 말고 진짜 일을 하자

노한동 (국어교육07-13), 작가·전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
2023년 서기관 사표 내고 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로 화제
관료제 모순 폭로한 첫 책 인기
가짜 노동 말고 진짜 일을 하자
작년 12월 발간한 첫 책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 불과 두 달 만에 1만2000부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노한동 동문.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 일찌감치 공직에 입문했지만, 2023년 4급 서기관으로 승진 직후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꼬박 1년. 그의 말에 따르면 ‘고시 공부할 때보다 더 힘겹게 제 살 깎아가며’ 쓴 책을 들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좌우 성향에 상관없이 여러 매체에 인터뷰가 실렸고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3월 4일엔 모교 행정대학원에서 개최하는 ‘정책 & 지식’ 포럼의 발제자로 나섰다. 포럼 직후 노 동문을 만났다.
“위로를 받았다는 서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지만, 반감을 표하시는 분들도 많죠. 특히 제목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분들 많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데 다 매도하는 거냐, 공직사회만 그런 거 아닌데 성급한 지적 아니냐, 고작 10년 근무해보고 뭘 아느냐 등등.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어떤 식으로든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외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공직자 개인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공직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고, 진짜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충심에서 쓴 책이니까요.”
책에서 그는 공직사회가 문제 해결보단 현상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해 뭐 하나라도 바꾸려 들면 기하급수적으로 일이 늘어나기 때문. 불필요한 예산을 발견해 이를 없애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예산 중 일부를 집행하지 않으면 신속 집행 독촉, 실집행 부진 사업 분류, 결산 지적 등 행정적 괴로움이 이어지는 데다 부처 전체 예산 규모는 줄면 안 되는 까닭에 아낀 예산만큼 다른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모른 척 계획에 따르면? 개인에게나 조직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정작 필요한 일엔 손을 놓으면서 끝나자마자 잊어버릴 발표, 달성할 의지도 노력도 없는 업무 계획, 무용한 관리·감시 같은 ‘가짜 노동’은 만연해 있다.
“정책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려면 소관 분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해요. 그러나 정부 보고서 작성에 절대 원칙은 ‘핵심만 간단하게’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 복잡한 현실을 담을 수 없으니 단순한 맥락으로 치환하게 되고, 이런 식의 보고서 작성에 능숙해질수록 실무를 직접 담당하는 사무관조차 문제를 깊이 탐구하기보단 보고하기 쉬운 틀에 맞춰 적당한 통계와 자료를 짜깁는 데 몰두하게 되죠.
허심탄회한 토론은 꿈도 꿀 수 없고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도외시되고 간단한 보고서로 현실을 파악하려는 공직사회의 태만은 간편한 인터넷 검색 등으로 정책이 형성되는 아찔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공직사회를 둘러싼 외부와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월성원전 자료삭제 사건’,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 때 국장급 이하 공무원부터 구속되면서 정권의 핵심 사업을 수행하다가 감옥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공직사회에 팽배해졌다. 공무원은 원래 책임 소재에 예민했는데 집권 세력이 바뀌면 죄 아닌 죄를 짓게 되니, 상급자는 애매한 단어를 사용해 언제든 발뺌할 준비를 하고 하급자는 잘못을 위의 탓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남기는 데 열을 올린다.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서로 불신하니 일이 잘 될 리 없다. 게다가 의제 설정 및 정책 결정 권한이 상당 부분 정치권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책임은 여전히 관료에게만 묻는다.
“포퓰리즘에 경도된 일부 정치인들이 여론의 폭발성을 무분별하게 공적 영역으로 끌고 오는 데다 정부의 언론 대응도 너무 지나쳐 즉문즉답식 졸속 대책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의 경우, 교육부는 48시간 만에 대책을 발표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재발 방지 종합 대책을 내놨어요.
국회는 한술 더 떠 사고 이틀 만에 관련 법안을 12개 넘게 발의했고요. 국회가 여론에 민감한 건 그렇다 쳐도 정부까지 중심을 잃고 휘둘려선 곤란합니다. 확 타올라 막 뭔가 하는 듯 보였지만, 이슈가 잠잠해지면 사실상 변한 게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경제성과, 정부 및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분야를 종합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살펴보면, 노 동문의 주장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조사 대상 67개국 중 우리나라는 20위를 기록했지만, 정부 효율성만 따졌을 땐 39위에 그쳤던 것. 정부 효율성이 2018년 29위에서 10계단 내려가는 동안 전체 순위는 27위에서 7계단 올랐다. 정부가 민간의 경제 활동을 외려 저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 노 동문은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해소’와 ‘성과 중심 승진 체계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사실 그마저도 쉽지 않기 때문에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초등학교 3학년인 제 딸이 서점에서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해요. 서점에 진열된 아빠의 책을 볼 때 또 책이 사람들한테 읽히고 팔리는 것을 볼 때 더더욱 좋아하죠. 공직에 있을 땐 세종시에 살았습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거주하는 사람들의 직업군이 한정돼 있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고요. 서울이 세종보다 낫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아이에게 안정된 직장이 아닌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사는 커다란 관사 안의 삶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고 할까요? 아이에게 여전히 자랑스러운 아빠인지는 모르지만, 전 지금이 좋습니다. 막연하게나마 문제로 인식하지만 콕 짚어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