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호 2025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다시 신발끈을 조여야 할 때
고정애 중앙일보 선데이국장
다시 신발끈을 조여야 할 때

고정애
제약87-91
중앙일보 S 선데이국장
본지 논설위원
노력으로 안 되는 일 많지만
치열한 노력이 또 힘내게 해
얼마 전 호주오픈 결승에서 패한 알렉산더 츠베레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다. 코트 밖에서도 그렇고 연습도 제대로 했다. 그런데도 스트레이트 세트로 졌다. 완전히 압도당했다. 서브만 더 잘 넣었다. 그게 다다. 다른 모든 걸 그가 더 잘했다. 잘 움직였고 포핸드도, 백핸드도 잘했다. 서브 리턴도 발리도 잘했다.”
세계 랭킹 2위인 그는 1위인 얀니크 신네르를 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그랜드슬램 도전인데 또 졌습니다. 접전이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3-0 완패였습니다. 그의 말에 좌절감, 낭패감이 짙게 밴 이유입니다. 그는 그러나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랜드슬램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로 커리어를 끝내고 싶지 않다.”
20년 전의 한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역대 최고 선수(GOAT) 로저 페더러의 시대가 열릴 무렵을 함께한 앤디 로딕입니다. 2003년 US오픈 우승자이고 석 달간 세계랭킹 1위를 한 강서버입니다. 그는 그러나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윔블던 결승전에서 페더러에게 패했습니다. 2005년 패배 뒤 그는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그가 그걸 다 이겨냈다”며 기자들과 이런 문답을 했습니다.
-페더러와 비슷한 나이여서 늘 함께 경기하게 될 텐데 불운하다고 느끼진 않는가.
“불운하다. 그러나 원래 그런 것이다. 그(페더러)는 결승전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를 이겨왔다. 대단히 인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난 앉아서 불평만 하고 있진 않겠다.”
-페더러를 흠잡을 일은.
“나는 그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너를 미워하길 즐긴다. 그러나 넌 진짜 괜찮은 놈이라고. 만일 내가 다른 얘기를 한다면 그건 질투심에서거나 이기고 싶은 마음 혹은 심술 때문에 나온 말일 거라고.”
-US오픈에서 이기길 원하나.
“물론이다. 내 기록이 1-31(당시 9전 1승-8패)이 되는 한이 있어도 그에게 이기길 원한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맞설 것이다. 누구든 최고와 경쟁하고 싶을 것이다. 그는 나의 잣대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를 말해주는. 나는 그와 계속 대결하고 싶다.”
부상과 부진의 몇 해를 보냈지만 그는 2009년 윔블던 결승에 올라 다시 페더러와 마주했습니다. 4시간17분, 그야말로 혈투였습니다.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그는 소감을 묻는 말에 “졌다(I lost)”고만 했습니다.
로딕이 언젠가 농반진반으로 “페더러가 (테니스에) 싫증내거나 다른 것을 하게 되길 바랄 뿐”이라고 했는데 결국 그가 먼저 은퇴했습니다. 서른 살이던 2012년이니 페더러보다 10년 빨랐습니다. 라파엘 나달에 이어 노박 조코비치까지 등장하자, 자신이 이들에 못 미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방황했냐고요? 한때 고민이 깊었겠지만 이젠 아닙니다. 부동산개발업자이자 자선사업가 그리고 ‘테니스 덕후’인 그의 최근을 디애슬래틱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꽤나 평온하고 단조로운 어른으로서의 삶(pretty beautifully boring grown-up existence).”
흔히들 말합니다. 노력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노력하자고. 그러나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압니다. 일정 수준 이상에선 노력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닙니다. 재능이 중요하고 어떤 면에선 운이 결정적입니다. 누군가 로딕을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bad timing)’고 했던데 맞을 겁니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는 건 답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 포르투나(Fortuna)가 운명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머지 반은 우리 자신의 지배 즉 우리들 각자의 비르투스(virtus)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결국 뜻을 못 이루더라도 치열했던 경험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겁니다. 새해 모두 다시 신발끈을 조여봅시다.

고정애
제약87-91
중앙일보 S 선데이국장
본지 논설위원
노력으로 안 되는 일 많지만
치열한 노력이 또 힘내게 해
얼마 전 호주오픈 결승에서 패한 알렉산더 츠베레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다. 코트 밖에서도 그렇고 연습도 제대로 했다. 그런데도 스트레이트 세트로 졌다. 완전히 압도당했다. 서브만 더 잘 넣었다. 그게 다다. 다른 모든 걸 그가 더 잘했다. 잘 움직였고 포핸드도, 백핸드도 잘했다. 서브 리턴도 발리도 잘했다.”
세계 랭킹 2위인 그는 1위인 얀니크 신네르를 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그랜드슬램 도전인데 또 졌습니다. 접전이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3-0 완패였습니다. 그의 말에 좌절감, 낭패감이 짙게 밴 이유입니다. 그는 그러나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랜드슬램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로 커리어를 끝내고 싶지 않다.”
20년 전의 한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역대 최고 선수(GOAT) 로저 페더러의 시대가 열릴 무렵을 함께한 앤디 로딕입니다. 2003년 US오픈 우승자이고 석 달간 세계랭킹 1위를 한 강서버입니다. 그는 그러나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윔블던 결승전에서 페더러에게 패했습니다. 2005년 패배 뒤 그는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그가 그걸 다 이겨냈다”며 기자들과 이런 문답을 했습니다.
-페더러와 비슷한 나이여서 늘 함께 경기하게 될 텐데 불운하다고 느끼진 않는가.
“불운하다. 그러나 원래 그런 것이다. 그(페더러)는 결승전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를 이겨왔다. 대단히 인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난 앉아서 불평만 하고 있진 않겠다.”
-페더러를 흠잡을 일은.
“나는 그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너를 미워하길 즐긴다. 그러나 넌 진짜 괜찮은 놈이라고. 만일 내가 다른 얘기를 한다면 그건 질투심에서거나 이기고 싶은 마음 혹은 심술 때문에 나온 말일 거라고.”
-US오픈에서 이기길 원하나.
“물론이다. 내 기록이 1-31(당시 9전 1승-8패)이 되는 한이 있어도 그에게 이기길 원한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맞설 것이다. 누구든 최고와 경쟁하고 싶을 것이다. 그는 나의 잣대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를 말해주는. 나는 그와 계속 대결하고 싶다.”
부상과 부진의 몇 해를 보냈지만 그는 2009년 윔블던 결승에 올라 다시 페더러와 마주했습니다. 4시간17분, 그야말로 혈투였습니다.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그는 소감을 묻는 말에 “졌다(I lost)”고만 했습니다.
로딕이 언젠가 농반진반으로 “페더러가 (테니스에) 싫증내거나 다른 것을 하게 되길 바랄 뿐”이라고 했는데 결국 그가 먼저 은퇴했습니다. 서른 살이던 2012년이니 페더러보다 10년 빨랐습니다. 라파엘 나달에 이어 노박 조코비치까지 등장하자, 자신이 이들에 못 미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방황했냐고요? 한때 고민이 깊었겠지만 이젠 아닙니다. 부동산개발업자이자 자선사업가 그리고 ‘테니스 덕후’인 그의 최근을 디애슬래틱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꽤나 평온하고 단조로운 어른으로서의 삶(pretty beautifully boring grown-up existence).”
흔히들 말합니다. 노력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노력하자고. 그러나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압니다. 일정 수준 이상에선 노력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닙니다. 재능이 중요하고 어떤 면에선 운이 결정적입니다. 누군가 로딕을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bad timing)’고 했던데 맞을 겁니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는 건 답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 포르투나(Fortuna)가 운명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머지 반은 우리 자신의 지배 즉 우리들 각자의 비르투스(virtus)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결국 뜻을 못 이루더라도 치열했던 경험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겁니다. 새해 모두 다시 신발끈을 조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