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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2024년 9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10여 개 직업 가진 N잡러…헌신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박재민 배우


10여 개 직업 가진 N잡러…헌신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박재민 배우(체육교육02-10)





배우·MC·국제심판·교수·번역가·유튜버·행정가
뭔가 배우고 싶을 땐 최고 전문가 찾아가

2010년형 휴대폰 쓰며 매년 소득 10% 기부
10월 총동창회 홈커밍데이 사회자로 봉사키로


요즘 가장 대중적인 서울대 동문은 누굴까. 정치인을 제외하면 박재민 동문이 손에 꼽히지 않을까. tvN의 인기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유재석으로부터 ‘십잡스(많은 직업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는 별명을 얻더니, 파리올림픽에서 ‘서사가 있는’ 브레이킹 해설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10월 20일 총동창회 홈커밍데이 사회로 봉사까지 한다고 해 반가운 마음에 인터뷰를 청했다. 8월 28일 서울 후암동 한 카페에서 약속을 하고, 그에 대해 더 알고자 최근 출간한 에세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를 정독했다. 의외의 모습이 많았다. 두 딸의 아빠, MBTI I(내향적 성향)로 시작, 2010년형 폴더폰 사용, 미국 인디애나주 시골 출생,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등. 만나자마자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빨간색 구형 폴더폰) 이 폰이 작동돼요?
“그럼요.”

-불편하지 않아요?
“뭔가를 빨리빨리 바꾸는 것에 취미가 없어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네 벌을 구입해 매일 돌아가며 입어요. 사람 만나는 것도 그리 즐기지 않고요. 카카오톡의 필요를 많이 못 느낍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단체 톡방의 울림도 신경 쓰이고요. 일반 전화 문자로 충분해요. 다만 구형 폰이라 보안이 취약해 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외우고 다녀요. 외우니까 폰을 어디 두고 와도 걱정은 없습니다.” 다섯 번 문자를 주고 받은 기자의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의외네요.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집돌이’예요. MBTI도 INFP고요. 일 없으면 집에서 두 딸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직업 많으니 손해보다 도움 돼

박재민 동문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을 통해서다. 조각 같은 몸매로 여러 장애물을 통과해 질주하는 모습이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군 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군인보다 더 군인 같은 모습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영화․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했다. 관악극회의 ‘헤이그 1907’, ‘리어왕’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다재다능한 인물로 그를 각인시킨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해박한 스노보드 해설과 지난해 영화 ‘미션 임파서블’ 출연진 내한 때 보여준 유창한 영어 진행 능력이었다.


-N잡러(직업이 여러 개인 사람)로 유명합니다. 배우, 해설위원, 번역가 외 또 뭐가 있을까요?
“방송 MC, 농구·브레이킹·스노보드 심판, 대학 교수, 유튜버, 스포츠 단체 행정가, 대학원생… 이 정도일 것 같은데요.”

-직업이 많아 손해 보는 일은 없을까요?
“손해보다는 도움이 많이 돼요. 시너지효과라고 할까요? 대학 시절 스노보드 선수 경험과 배우 경험이 합쳐져 남들보다 재미있는 해설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모든 분야가 얽혀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심판하는 모습은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많이 하세요?
“스노보드의 경우 제가 대한스키협회 심판위원장입니다. 브레이킹은 우리나라에 국제심판이 몇 명 없는데 하고 있고요. 국가대표 선발전 등에 참여하죠. 1년에 스노보드의 경우 20번, 브레이킹은 3~4번 참여합니다.”

-최근 파리올림픽에서 KBS 브레이킹 해설위원으로 참여하셨는데, 현지 분위기는 어땠나요.
“여의도에서 해설했습니다. 신생 종목이라 굳이 현지까지 보낼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베이징 동계올림픽, 도쿄올림픽 때도 국내서 해설했어요. 현지 가서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죠.”

-다재다능의 비결이라면.
“뭔가 배우고 싶을 때 항상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어느 경지에 오르기까지 꾸준히 밀고 나갔어요. 초반에 힘들고 지루한 언덕만 넘어가면 누구나 중간 이상의 실력은 갖추게 되는 것 같아요. 스노보드, 농구, 브레이킹이 모두 그렇게 배운 운동이죠.”


스포츠 정책에 기여하고 싶어

박 동문은 학구파 연예인으로도 유명하다. 학부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하며 경영학을 복수전공 했고, 모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모교 대학원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다. 미 조지타운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산업경영학 석사과정에 있기도 하다.

-공부 욕심도 남다른 것 같습니다.
“네. 다양한 영역에 공부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스포츠로 귀결됩니다. 어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편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고, 실제 정책 이론을 배우기 위해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했고요. 지금 스포츠매니지먼트학 박사 논문을 어떤 주제로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킹 등 춤과 관련해 정화예술대학 등에서 교수를 하셨잖아요? 스포츠 정책 분야 교수가 될 수도 있겠네요.
“전업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서 논문 점수나 연구 등에서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통해 체육 정책에 도움 주고 싶은 생각은 큽니다.”

-기대가 됩니다.
“석사학위 주제가 브레이킹의 정부 지원 정책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제가 논문을 쓸 당시는 브레이킹이 문화예술 분야라서 그쪽 지원이 활발했어요. 그러나 스포츠로 편입되면서 많은 정책이나 행정적인 부분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더라면 이번 파리올림픽서 더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책의 타이밍이 무척 중요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늘 가까이 듣고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정책이 무엇일까 고민해야죠.”

-현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 양성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세요.
“과거 엘리트 선수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의무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했죠. 그 부작용으로 신유빈 선수처럼 중도에 포기하고 검정고시 등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생겨났고요. 저는 엘리트 선수는 일찌감치 운동으로 꿈을 정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운동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소통 능력, 교양, 인성 교육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박 동문은 30대 중반부터 꾸준히 나눔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에만 사랑의 열매, 천안함 재단 등에 6000만원 이상을 기부했다. 사랑의 열매 억대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스노보드 청소년 선수를 오랫동안 후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헌혈을 20회 이상 하는 등 헌혈, 연탄 봉사 활동 등은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프리랜서라 수입이 일정치 않을 텐데, 기부를 많이 하셨네요.
“억 단위로 기부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수입의 10%는 하려고 노력합니다.”

-기부 철학을 들려주세요.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기부를 많이 하자는 생각이에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남에게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저는 기부한 만큼 저에게도 뭔가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혈하면 공짜 건강검진을 받잖아요. 연탄을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드리면서 저는 땀을 쭉 빼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고요. 제가 후원한 학생들이 국제대회에 나가 성적을 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소아암 환자들에게도 기부를 하는데, 치료가 종결돼 건강한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해요.”

-긍정적인 생각이네요.
“기부할 때 ‘이런 분 도와주세요’ 하고 확실하게 지정하는 편이에요. 기부하면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고요. 기부는 돈이 정말 값어치 있게 쓰이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기부가 너무 권장되는 사회도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아요.”

-무슨 말씀이세요?
“기부가 권장되는 사회는 뭐랄까,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떠넘긴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 없이 조모 아래서 자라는 불쌍한 아이에게 전화 한 통 하면 2500원이 후원됩니다’ 이런 광고는 어떻게 보면 국가 입장에서는 창피한 일이죠. 이상적인 이야기겠지만, 기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사회가 잘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연 기부도 많이 하시죠?
“학교나 특정 시설에서 강연을 요청하면 웬만하면 가려고 합니다. 저의 강연으로 누군가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어요.”


가족의 행복 가장 중요한 가치


박재민 동문은 학과 3년 후배와 2019년 결혼해 2세, 5세 딸을 뒀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부친은 박영인(제약70-74) 고려대 명예교수다. 박영인 교수가 인디애나주에서 유학 중일 때 박재민 동문이 태어났다. 박 동문은 인디애나주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박 동문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데는 부모님 영향이 컸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부모님이 저 어렸을 때부터 바깥 활동이 많으셨어요. 형은 5살 터울이라 함께 놀 기회가 적었고요. 혼자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찾다 보니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 키워진 것 같아요.”

-부모님이 강조하신 게 있다면.
“어머니는 시험 끝나고 풀어져 있으면 ‘시험 끝났다고 다 끝난 거 아니다. 그냥 하루일 뿐인데 거기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다음을 준비해야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가족이 모든 것에 최우선이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고요.”

-부인이 같은 과 후배인데 같이 즐기는 운동이 있나요.
“아내가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해요. 스노보드는 같이 타곤 했는데, 옛날 얘기예요.”

-아이들 키우는 건 어때요?
“힘들기도 하지만 좋아요. 아내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아이 돌보는 시간이 많아요. 밥 먹이고, 등원시키고, 씻기고…. 저는 철저하게 육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애를 키워보니 10개월만 지나도 엄마가 들기 무거워요. 첫째가 지금 20kg 입니다. 체력적으로 여자가 키우기 힘들죠. 육아를 단순히 모성애 관점에서 접근하면 현실과 괴리가 있어요. 체력 좋은 남자가 하는 게 효율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아이가 없었을 때는 도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거든요. 아이가 생기니까 달라졌어요. 가족이든, 나를 아는 어떤 누구든 헌신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도전은 물론 중요한 가치죠. 도전을 통해 얻는 성취들을 남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