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2005년 9월] 기고 감상평
`된장마을'에선 음악이 흐르고…
都 完 女(기악73 77) 메주와 첼리스트 대표
음악은 기다림과 인내를 배우는데 정말 좋은 공부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위해선 잡다한 욕구들을 포기해야 했다. 포기하는 훈련이 지금의 간결하고 욕심 없는 삶을 살게 만드는데 도움을 많이 줬다. 특히 슬로우푸드인 된장을 만들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된장은 2년을 기다려야 깊은 맛의 된장이 되고, 간장은 3년을 기다려야 제대로 숙성된 조선간장이 된다. 잡내가 나지 않는 곰삭은 맛. 음식의 독소를 없애주고 맛을 어우르고 살려주는 군더더기 없는 맛. 그래서 나 역시 기다림을 가지고 서서히 숙성되는 간장처럼 살려 한다.
서울부터 4시간이나 걸리는 강원도 정선. 된장마을이라 불리는 `메주와 첼리스트'에 일년이면 수만명의 사람들이 방문을 한다. 오시는 분 모두 스승 아닌 분들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마운 마음에 잔치를 연다.
3천2백80개의 항아리가 사열하고 있는 앞마당에서 7월6일과 8월1일~3일에 음악회를 열고, 오시는 분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된장아줌마인 정선댁에게 테크닉을 요하는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때 나오는 삶의 향기를 공유한다. 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음악을 나눈다. 그러면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제가 이 된장을 팔기 위해서 첼로를 42년간 공부했구요, 독일 유학 중에는 박스공장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택배를 싸는데는 짱이에요. 저는 준비된 된장 장사랍니다." 된장아줌마인 정선댁에게 테크닉을 요하는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때 나오는 삶의 향기를 공유한다. 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음악을 나눈다. 그러면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제가 이 된장을 팔기 위해서 첼로를 42년간 공부했구요, 독일 유학 중에는 박스공장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택배를 싸는데는 짱이에요. 저는 준비된 된장 장사랍니다." 지금은 전통식품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라고 강의를 하러 다니지만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업고 된장을 푸고, 주문을 받아 택배를 싸고, 함께 일하는 마을사람들 밥해주고 1인 다역을 했다. 그러나 13년 전 고생을 하던 시절이 가장 풍요롭게 느껴진다. 60인분을 하루에 5끼를 하면서도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부엌이 없어 돌담에 식탁을 만들고 장작불에 밥을 했다. 설거지는 시냇물에 이고 가서 모래 한 줌, 풀 몇 포기를 뜯어 그릇을 씻고, 광주리에 그릇을 담고 흐르는 물에 다시 한번 흔들면 설거지 끝.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러워 한다. 그러면 친구들에게 "시냇물을 개수대로 가진 사람 나와보라고 해"하며 깔깔거린다. 일을 많이 해서 손이 트고 피가 맺히고 손등이 갈라졌어도 첼로를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손등이 얼룩말 가죽처럼 되어 있어도 한오백년 한 자락에 청중이 모두 울기도 한다. 어느 분은 내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신다. 나는 또 웃으면서 "세상에 손 튼 첼리스트는 저밖에 없잖아요, 깔깔깔."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 인생은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
3천2백80개의 항아리가 사열하고 있는 앞마당에서 7월6일과 8월1일~3일에 음악회를 열고, 오시는 분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된장아줌마인 정선댁에게 테크닉을 요하는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때 나오는 삶의 향기를 공유한다. 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음악을 나눈다. 그러면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제가 이 된장을 팔기 위해서 첼로를 42년간 공부했구요, 독일 유학 중에는 박스공장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택배를 싸는데는 짱이에요. 저는 준비된 된장 장사랍니다." 된장아줌마인 정선댁에게 테크닉을 요하는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때 나오는 삶의 향기를 공유한다. 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음악을 나눈다. 그러면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제가 이 된장을 팔기 위해서 첼로를 42년간 공부했구요, 독일 유학 중에는 박스공장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택배를 싸는데는 짱이에요. 저는 준비된 된장 장사랍니다." 지금은 전통식품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라고 강의를 하러 다니지만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업고 된장을 푸고, 주문을 받아 택배를 싸고, 함께 일하는 마을사람들 밥해주고 1인 다역을 했다. 그러나 13년 전 고생을 하던 시절이 가장 풍요롭게 느껴진다. 60인분을 하루에 5끼를 하면서도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부엌이 없어 돌담에 식탁을 만들고 장작불에 밥을 했다. 설거지는 시냇물에 이고 가서 모래 한 줌, 풀 몇 포기를 뜯어 그릇을 씻고, 광주리에 그릇을 담고 흐르는 물에 다시 한번 흔들면 설거지 끝.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러워 한다. 그러면 친구들에게 "시냇물을 개수대로 가진 사람 나와보라고 해"하며 깔깔거린다. 일을 많이 해서 손이 트고 피가 맺히고 손등이 갈라졌어도 첼로를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손등이 얼룩말 가죽처럼 되어 있어도 한오백년 한 자락에 청중이 모두 울기도 한다. 어느 분은 내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신다. 나는 또 웃으면서 "세상에 손 튼 첼리스트는 저밖에 없잖아요, 깔깔깔."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 인생은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