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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2005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1명의 엔지니어가 1만명 책임진다

吳 春 昊(언어82 ­86)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차장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학에 공과대학이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세기 들어서야 겨우 물리학부 아래에 공학 학과(Department of engineering)가 1908년에 개설되었을 뿐이다. 1861년에 공학 칼리지로 세워진 미국의 MIT보다 무려 47년이나 늦었으며, 일본이 도쿄제국대학에 공학부를 설치한 1886년과 비교해봐도 20년 이상 뒤졌다.  옥스퍼드대가 공대가 아닌 공학 학과 설립조차도 늦게 세운 것은 영국 귀족층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학(science)은 신사의 관심사가 될 수 있으나 공학(engineering)분야는 신사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19세기말 들어서 영국은 모든 산업분야에서 미국보다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결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예로부터 물러서게 된 바탕에 옥스퍼드대학의 고집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하기 어렵지 않다.  옥스퍼드대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의 하버드대학도 설립 초기부터 공과대학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 이웃에 있는 MIT에 우수 인재를 빼앗기고 있으며 21세기 학문간 융합현상에 뒤쳐지고 있다고 하버드는 평가했다.  로렌스 서머스(Lawrence H. Summers)총장은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 기술이 세계를 이끄는 중심축"이라고 강조하면서 10억달러를 투자해 MIT에 필적할 `하버드 공대' 설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최근 하버드대학 홈페이지에는 기술관련 뉴스로 항상 채워져 있으며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비단 하버드대학의 변신뿐만이 아니다. 교수가 되기 가장 어렵다고 소문난 독일의 대학도 주니어 교수제도를 도입해 젊은 공학박사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으며, 새로운 프로젝트 발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21세기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는 전통을 고집하고 권력과 권위에만 매달려 있으면 대학이건 국가건 살아날 방도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취재현장에서 보면 국내 대학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 교수들이 기업체 사람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며 기업체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을 키우면 좋을 것인지 부담 없이 의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기업체 사람들도 대학에 이런 사람을 원한다고 스스럼없이 주문한다. 단순히 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연구성과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각 대학 공과대학에서 경영학 강의를 하는 곳도 늘고 있다. 기업 임원이 되려면 경영을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디자인도 잘 알아야 하는 소위 `슈퍼맨'을 요구하고 있다. 홍보도 열성적이다. 서울대 공대도 홍보 인력을 두고 홈페이지(www.beengineers.com)를 개설해 대학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이 홈페이지에는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자주 들락거리며 정보를 접하고 있다. 많은 대학 교수들도 홈페이지에 글을 띄우며 이공계 소개를 적극 펼치고 있다. 이전의 엄숙한 상아탑 분위기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새로운 학문분야도 적극 개척하고 있다. 학문간 융합현상이 일면서 생물과 컴퓨터기술이 만나고, 나노기술과 컴퓨터가 만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젊은 취향에 맞는 분야도 생겨났다. 이를 문화와 기술을 접목한 문화기술(CT)분야라고 한다.  특히 세계적인 붐을 타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이러한 분야의 인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이자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20세기에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이공계 출신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21세기에는 국가간 경제전쟁, 기술전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최전선에는 엔지니어와 사업가, 연구자 등 과학기술자들이 책임지고 있다. 이른바 참여정부가 얘기하고 있는 `과학기술중심사회'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재들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 일일신(日日新)하고 우일신(又日新)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 공대 홈페이지 맨 머리에 있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유능한 엔지니어 한 명이 1만명 이상의 삶을 책임집니다"라는 글귀가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