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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2024년 6월] 기고 에세이

K-방산과 병력특례제도

김상근 KOSTEC 조선해양 부사장
 
K-방산과 병력특례제도

김상근 (조선74-78)
KOSTEC 조선해양 부사장


K-방산이 뜨고 있다. 2022년 K-방산 수출은 173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스라엘의 무기수출액(110억 달러 이상)보다도 많다. 이스라엘은 국내 생산 무기의 75%를 수출하고 각종 첨단기술로 세계방산시장을 석권해 그동안 K-방산의 롤모델이자 넘보기 힘든 ‘넘사벽’으로 여겨왔다. 

1972년 ‘우리가 만든 배로 우리 바다 지키자’라는 기치로 해군 조함단과 방산조선소인 코리아타코마조선에서 해군 고속정 개발을 시작으로 다종의 고속함정 개발에 성공했다. 1978년부터는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베네수엘라 등에 다양한 함정을 수출했다. K-조선으로 대표되는 한국 조선기술, 함정기술의 높은 자긍심은 육군사업, 공군사업으로 점차 확대돼 K-방산을 꽃피웠다. K-방산의 성공은 새마을운동의 거국적인 근면 분위기, 정부의 기술우대정책과 함께 기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정부의 병력특례제도 시행으로 기간산업 및 방위산업체에 우수한 젊은 기술자들이 대거 진출했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는 사명감과 장기간 근무가 밑거름이 됐다. 

필자도 1977년 12월 초 마산에 위치한 방산조선소인 코리아타코마조선에 입사해 방산업체 최초로 1기 방산 필수 요원에 선정됐다. 서울대 조선공학과의 경우, 1978년엔 졸업자 48명 중 25명이 해군사업에 투입됐으며 이러한 현상이 10여 년 지속됐다. 당시 조선공학과는 3곳(서울대, 인하대, 부산대)이었고 타 대학은 초기에 군필자가 많아 상대적으로 병역특례가 적었지만, 점차 증가해 전국적으로 최고의 기술집단을 대거 수혈한 함정 분야가 방산조선소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조선산업에선 특례 5년을 마친 기술자들이 자연스럽게 상선분야로 대거 진출하여 세계조선 1위 강국 건설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젊은 기술자들이 한평생 청춘을 바쳐 묵묵히 한우물을 파며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 또한 함정, 고속정 전문가로 47년째 한우물을 파고 있다. 1985년 국내 최초 Hovercraft 개발로 50노트(시속 93㎞) 돌파, 2002년 다목적상륙강습함 LPX 설계, 2007년 미해군 LCAC를 능가하는 수륙양용공기부양정 LSF-II 개발, 2021년 Asia 최초 63노트(시속 116㎞) 초고속정 개발 등을 수행하여 K-고속정 기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자부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조선입국(造船立國)’과 병력특례제도는 한국산업의 현대화와 K-방산을 위한 박정희 대통령의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