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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2005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이산가족 `화상상봉' 단상

李 元 燮 경원대 신방과 교수 본보 논설위원

 `IT 강국'으로 손꼽히는 우리에게 화상회의 장면은 낯선 광경이 아니다. 첨단을 달리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 부처 회의도 화상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 하지만 철책으로 굳게 막힌 남북사이에 이산가족들이 화상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또 다른 감동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인류문명과 이성을 상징하는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상과 한 가족에게 50년이 넘도록 생이별을 강요한 비인간적 상황이 맞물려 대비되면서 그 비극성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요소의 어색한 맞물림이 오늘날 한반도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화상상봉'은 비록 손을 맞잡고 볼을 비비며 가쁜 숨결을 직접 느낄 수는 없지만, 수십 년 쌓인 이산가족들의 애끊는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계기가 됐다. 광복 60돌인 지난달 15일. 화면 너머로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얼굴을 대하건만, 막상 병마에 쓰러진 부모는 이미 칠순 노파가 된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광경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을 그리다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을 보여주며 애틋한 사연을 전하는 눈물겨운 모습은 보는 이 모두를 숙연케 했다.  화상상봉이 최선의 방안은 아니다. 흩어진 가족들이 직접 만나 얼싸안고 눈물을 쏟으며 그동안 쌓인 한을 풀도록 하는 것이 한결 낫다. 실제 그런 대면상봉 행사가 간혹 이뤄지고는 있다. 문제는 대상자가 극히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북녘 가족을 만나려고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한 `이산 1세대'는 현재 12만명인데, 해마다 4천~5천명이 숨지고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북녘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쪽에서 먼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친다면 상봉 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터이다. 기존 대면상봉과 병행해 화상상봉을 연중 행사로 추진해야 하는 까닭이다.  혈육이 어느 날 뿔뿔이 흩어진 채 반세기가 넘도록 생사조차 모르는 이 기막힌 사연을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민족의 아픔을 딛고 우리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고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이 서로 책임 소재와 무게를 따지며 마음의 빗장을 계속 걸어 닫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 화해의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며 이데올로기 대립을 화해와 평화로 녹여 가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올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오르는 현상이 한줄기 희망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