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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호 2024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김 수출 1조원 시대 열었지만 박사급 연구자 3명뿐”

황미숙 전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연구소장

“김 수출 1조원 시대 열었지만 박사급 연구자 3명뿐”

황미숙 (식물83-87)
전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연구소장



“정부 주도 국립김연구소 절실”
30여 년 신품종 개발·품종보호 매진


“해외에서 히트 친 냉동김밥을 쌀 가공품의 성공이라고만 하더라고요. 한국 김의 성공이기도 한데….”

황미숙 동문은 한국 김의 전성기가 누구보다 반가운 사람이다. 1994년 김을 주제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 연구사와 수산식물품종관리센터장, 해조류연구소장 등으로 연구실과 현장을 오간 지 30여 년. ‘블랙 페이퍼’에서 세계인이 찾는 수퍼 푸드이자 한국의 수출 효자 품목으로, 다이나믹하게 지위 역전하는 동안 한결같이 김에 천착했다. 김 수출 1조원 시대를 이끈 숨은 공로자다.

3월 4일 수과원 수산식물품종관리센터가 있는 목포에서 만난 황 동문은 “내가 김에 빠졌다기보다, 김이 날 옭아맨 것 같다”며 웃었다. 정년을 앞두고 퇴직예정자 교육 중인 그의 명함엔 ‘비단잎돌김’이 그려져 있었다. 네모 반듯하지 않고 여느 식물처럼 잎을 펼친 김의 모습이 낯설었다. “예쁘죠? 실제로 정말 비단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워요. 박사과정 때 제가 세계에서 처음 발견한 신종이죠. 학명도 ‘Porphyra venusta’(venusta: 고운, 우아한)로 하려다, ‘Porphyra koreana’로 지었어요.”

우리는 김이 어떻게 사는 식물인지 잘 모른다. 김은 여름엔 굴 껍데기 속에서 실 모양 사상체로, 겨울엔 바다에서 잎 모양의 엽체로 자란다. 종자 생산 어가는 사상체를 배양해 얻은 종자를 굴 껍데기에 심어 기르고, 양식 어가는 거기서 얻은 씨앗을 김발에 붙이고 차가운 바닷물에서 길러 가공 전의 ‘물김’을 얻는다. 이 모든 과정이 실험실에서 가능한 수과원은 현장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김 산업 전반을 지원해왔다. 한국 김의 성공 비결을 그는 “산업·연구·정책의 3박자가 잘 맞아서”라고 했다. “종자 생산부터 양식, 가공, 유통, 수출까지 산업계 모든 분들이 추운 겨울 바다에서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연구자들은 신품종과 양식기술을 개발하면서 산업계의 어려운 부분을 해결했고, 정부는 김 산업법을 제정해 정책을 제시하고 예산 확보에 힘썼죠. 이런 시너지는 수산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성공사례예요.”

다양성도 이점이다. “전 세계 140개 김 중 우리나라에 25종이 자생하고 그 중 방사무늬김, 모무늬돌김, 잇바디돌김까지 3종(아래 사진)을 양식해요. 방사무늬김만 기르는 일본, 방사무늬김과 단김을 생산하는 중국에 비해 제품이 다양하죠. 한때 즐겨먹었지만 환경 적응성이 낮아 사라진 참김도 수과원이 복원 중입니다. 부드럽고 맛이 좋다며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양식하는 방사무늬김·모무늬돌김·잇바디돌김의 생김새. 최근 수과원에서 예전에 널리 양식했던 참김도 복원하고 있다.  



골고루 공을 돌렸지만 한때 김 산업은 연구자들 덕에 큰 고비를 넘겼다. 2012년 수산식물 품종보호제도 실시를 앞두고 김 종자의 국적이 중요해졌다. 2008년까지 국내 양식김의 약 20%가 일본 종자였기에 로열티가 나갈 수도 있던 상황. 수과원과 지자체 연구기관, 대학이 똘똘 뭉쳐 품종 개발에 서둘렀고 종자의 국산화를 이뤄냈다. 황 동문이 개발한 김 육종 방법이 주효했다.

“농업이나 산림에 비해 수산 분야는 오랜 양식 역사에도 불구하고 신품종 개발 역사가 짧아서 육종 방법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무엇이 좋은지 몰라 육상식물에 쓰는 방법을 전부 적용했더니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나오더군요.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발한 신품종이 31개인데 수십년 전 김 육종을 시작한 일본(17개)보다 훨씬 많아요.” 수과원은 종자은행에 국내외 김 유전자원 500여 계통주를 보관하면서, 매년 김 종자를 생산해 어업인에게 보급하는 일도 민간업체와 분담한다.

김은 산업적 가치가 높아 세계 학계에서도 주목하는 해조류다. 황 동문은 박사논문에서 국내 최초로 한국 김의 종류와 분포를 파악했고, 2012년엔 8개국 학자와 공동 연구 끝에 한국 김이 포함된 김파래목 식물의 종을 재분류해 미국조류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종자 분쟁에 대비해 우리 김의 유전자 마커도 개발했다. “김부각, 김자반처럼 가공된 후에도 품종과 원산지를 알 수 있는 기술이에요. 일본에서 우리 김에 대해 일본 품종을 사용한다고 주장하거나, 중국에서 불법으로 우리 품종을 양식할 때 대응할 근거가 생긴 거죠. 복원 중인 참김까지 우리나라 양식 김 4종에 대해 유전자 마커가 개발됐습니다.”

호황에도 현장에선 걱정이 많다. 어업인 고령화는 다행히 2세들이 가업을 잇는 일이 늘었다. 기후변화로 잦아진 고수온 피해는 아직 해법이 없다. 20도 남짓한 고수온에서 잘 견디는 신품종을 수년째 개발 중이지만 녹록지 않다.

연구 인력부터 태부족이다. 현재 수과원 내 박사급 김 연구자는 단 3명. 말로만 ‘검은 반도체’다. “그동안 적은 인력으로 일하면서 한계가 많았어요. 2021년 김 산업법이 제정된 후 김 연구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산업 전반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해결하기 위해 국립김연구소 설립을 요청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제 이후로 모교 출신 연구자를 본 적도 없고요. 이왕이면 모교 후배들이 김 산업의 난제를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출이 계속 잘 되려면 김의 식품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과 더 독창적인 가공 제품이 나와야 할 텐데, 그런 면에서도 후배들이 아이디어를 내 주면 좋겠어요.”

“외국 유학이 당연하던 시기 국내에서도 충분히 국제적 수준으로 연구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 아무도 연구한 적 없던 김을 택했다”는 그는 허약했던 몸이 전국의 바다를 누비며 튼튼해졌다고 했다. 박사과정에서 해조류 중 청각과 대마디말을 전공한 남편도 만났다. 그동안 이룬 건 후배들에게 넘기고 간다 말했지만 아직 김이 그를 놓아주진 않은 듯했다.

“김 양식 산업 현안 해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학문적인 연구 결과를 얻고도 논문으로 내지 못한 게 많아 아쉬웠어요. 10년 동안 한 선배님과 우리나라 김 전체의 형태적, 유전적인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를 해왔는데, 그 결과를 정리해 마무리짓고 싶어요. 그리고 만일 국립김연구소가 설립된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