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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2023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계란만 팔지 않아요, 축산업계의 구글이 될 겁니다”


“계란만 팔지 않아요, 축산업계의 구글이 될 겁니다”

황한솔 (체육교육99-03)
한솔루트원 대표



친환경 난각 나노코팅 기술 개발
살모넬라·조류독감 안전 ‘맘란’ 인기
달걀 한 알에 과학 담은 괴짜  


“연구소 세우고 R&D(연구개발) 하는 양계장 보셨나요? 제 목표는 축산업계의 구글이 되는 겁니다.”

황한솔 한솔루트원 대표를 키운 건 팔 할이 계란이었다. 40년간 산란계를 키우며 아들의 이름을 딴 ‘한솔양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양계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대로 아들은 자랐다. 모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석사학위까지 받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스포츠 빅데이터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포츠계 빅데이터 열풍이 막 시작되던 참에, 쓰일 곳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양계장을 지키는 건 아들이다. 2017년 병환으로 쓰러진 아버지 대신 황 동문이 이어받은 것. 6년 사이 특허 기술 세 개, 유통센터와 부설 연구소까지 보유한 양계 기업으로 변모했다. 10월 11일 충남 당진 한솔루트원 계란유통센터에서 만난 그는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계란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기술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양계장은 여름엔 살모넬라균, 겨울엔 조류독감으로 비상이 걸린다. 양계장을 맡은 첫해 살충제 달걀 파동까지 발생해 계란 수급이 널을 뛰었다. “계란의 신선도와 안전성을 잡고 싶었어요. 마침 카이스트 연구진이 식물에서 나오는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을 이용한 물질을 과일에 뿌려 부패를 늦췄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죠.”

해마다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계란이 문제가 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차아염소산나트륨(락스) 희석액으로 달걀을 세척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론 살모넬라균의 50%만 제거될 뿐. 최인성(화학87-91) 카이스트 교수와 계란을 대상으로 폴리페놀 코팅 기술의 항균 효과를 실험했다. 대성공이었다. “폴리페놀 나노코팅 기술로 달걀 껍질에서 대장균은 100%, 살모넬라균은 99.9% 제거됐고 2주 동안 균일한 신선도가 유지됐어요.”

첫 기술로 특허를 출원한 데 이어 올해 5월엔 같은 원천기술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없애는 소독과 항균 기술을 개발해 두 번째 특허를 냈다. 국제학술지에 논문도 실었다. “조류독감 아니라도 5만마리 중 하루 5마리는 자연 폐사하는데, 우리가 개발한 소독제를 계사에 뿌리고 두 달간 키웠더니 하루 0.6마리로 줄더군요. 폴리페놀은 천연 물질이니 달걀에 뿌려도 먹는 데 문제 없죠. 다른 식품에도 적용 가능성 높은 친환경 기술이에요.” 난각을 두껍게 만들어 신선도를 높이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기술 상용화를 위해 국비지원을 받아 계란유통센터를 짓고, 동탄에 연구소도 차렸다. 자체 농장을 포함해 협력농장 생산분까지 하루 30만개 계란에 폴리페놀 코팅제를 입혀 ‘맘란’이라는 브랜드로 출하한다. ‘안심 달걀’로 소문나 당진시 학교급식지원센터, 백화점, 대형마트에 입점했다. 10구에 5000원대라는 낮지 않은 가격에도 매출은 상향곡선. “주말이면 ‘맘란’을 파는 서울 마트를 찾아 직접 마이크 들고 판촉도 한다”고 했다. “계란 파는 것보다 소비자 니즈 파악하려고요. 고객들께 ‘저번 계란은 어떻더라’는 얘길 들으면 품질 관리며 생산을 어떻게 할지 답이 나오거든요. 소비자의 요구는 올라왔는데, 생산과 유통도 그에 따라가야죠.”

지난해 연매출 120억, 올해는 200억원을 바라보지만 늘 빠듯한 건 계란으로 번 돈을 고스란히 연구개발에 쏟아붓기 때문. 연구비 한 푼 나라에서 지원받은 적 없다. 기술의 우수성과 시장성을 인정받아 정책자금을 배정받아도, 막상 대출기관에 가면 기술은 보지도 않고 농업 회사는 담보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하기 일쑤다. 농식품 투자기업으로 모태펀드를 받았지만 일반적인 농업법인이 정책자금 지원을 받기란 불가능하다고 했다. “농업 기술이 저평가되는 거죠. 위에서 식량자원 확보가 국가 어젠다가 되고, 대통령이 농산물 수출을 강조하면 뭐하나요. 밑으로 내려오면 그 문제를 해결할 농업 기술을 제도가 받쳐주질 않는데요. 농업 기업이 R&D 할 이유가 없죠. 미국에선 유사 기술이 빌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는데, 식품 안전과 식량 안보가 걸린 농업 기술을 등한시하는 게 답답해요.”

힘들다는 푸념 끝엔 입버릇처럼 “그래도 재밌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기술은 우리의 무기고 양계장은 테스트베드, 궁극적으론 양계업에 ICT와 빅데이터를 접목하고 싶다”고 했다. 떠나온 줄 알았는데, 데이터 전문가의 면모가 여전히 번뜩였다. “스포츠나 농업이나 데이터 비즈니스의 본질은 같으니까요. 지금의 조류독감은 터지고 나서야 관리를 하죠. 스마트팜을 구축해서 센서를 이용해 계사 주변 대기 흐름에서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기술을 쓰면 조류독감도 사전에 막을 수 있어요. 그런 질병 관리부터 사료 공급, 마케팅, 가격 책정까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많아요. 저에겐 신나는 일이죠.”

지난달 19일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형 양계기업 ‘파키흐 포울트리 팜즈’ 관계자가 한솔루트원의 기술에 관심을 갖고 당진까지 찾아왔다. 한솔루트원이 친환경 난각 나노코팅 기술과 조류독감 예방을 위한 소독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신, 현지에서 기술 고도화를 지원받는 내용으로 MOU를 맺었다. 10월 말엔 황 동문이 사우디로 가서 현지에 한솔루트원의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양계 시설을 구축하는 계획을 타진해볼 생각이다.

“계란 장사가 나중에 기술을 팔고, 데이터를 판다면 갭이 너무 커서 이해를 잘 못 하시더라고요. 투자자들조차도요. 질병을 컨트롤하는 기술을 자발적으로 개발해서 특허를 냈고, 농장에서 테스트도 마쳤습니다. 계란은 전체 시장의 3% 점유가 목표예요.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 기술을 수출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

황 동문은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이것저것 실험을 많이 하셨다”며 “아버지가 말씀은 잘 안 하셔도 당신의 업적을 잘 이어가니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스포츠 데이터 전문가로서도 그를 찾는 곳이 많다. 한양대 스포츠과학부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고, 충청남도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주민 체육활동 증진 프로젝트를 자문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 최근 모교 푸드테크 최고위과정을 시작했다. 체교과 학생회장에 ROTC(41기) 출신이고, 별명이 ‘황대장’, ‘독사’. 뚝심과 추진력을 짐작게 한다. 황 동문이 이끄는 한솔루트원이 축산·데이터·ICT 등이 융복합된 친환경 항바이러스 기술로 올겨울 침체된 양계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를 모은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