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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호 2005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농업이 살 길은 도시웰빙과 농촌생태문화의 결합"





품질과 안전성으로 경쟁력 높일때다
1校1村운동,친환경유기농에 관심을

장관시절 스트레스로 치아 `왕창' 빠져
농축협 통합,수세 폐지 등 농정 대혁신

  "철이 들면서부터 지금까지 나의 생각, 경력에서 `農'자를 빼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상지대 金成勳(농경제58 ­63)총장. 金동문은 IMF시절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농민들의 편에 서서 농업,농촌문제를 해결했으며, 도시와 농촌을 연결해 생산농가의 활로를 열어줄 친환경유기농업 제도를 도입․정착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건강, 생명, 환경'을 대표하는 강원도의 한 대학 총장으로서, 또 나라의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각종 시민단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金총장을 만나 金동문의 대학교육 발전 구상, 농촌 경제 회생 방안, 한국사회 통합을 위한 시민 운동 방향과 학창시절 이야기 등을 들어보았다.


  - 그동안 농업경제분야 학자로, 공직자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시다가 지난 3월부터 상지대 총장으로 취임하셨는데요. 대학총장으로서 어떤 대학교육 발전 구상을 갖고 계십니까.
  우선은 수도권의 대학과 지방의 대학을 구분해 설명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대학은 교육중심, 그리고 그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뿌리내릴 수 있는 대학이 돼야 합니다. 수도권대학의 백화점식 교육을 지방대학들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대학 스스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한 마디로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또 그 대학만의 특징, quality를 살려 특화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교육부 예산의 4.5%밖에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학생들의 등록금과 재단의 출연금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재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대학은 몇 개 안되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특성화를 해야죠. 운영하기 어려운 거대 학부나 학과는 국립대가 맡고,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학과는 사립대가 집중 육성시켜야 합니다. 사립대가 위기에 봉착한 것은 지방의 특수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사립대로서의 본령을 지키지 못한 점 그리고 근본적으로 정부가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의무는 똑같이 지운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난제 해결을 위한 대안이라든가 또 사립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무엇보다 지방의 사립대학은 학생제일주의를 표방해야 합니다. 학교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학생입니다. 그러한 인재들을 받아들여 교육시키고, 졸업한 후에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애프터 서비스를 해줘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지대는 한의과대학과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지역주민의 건강을 생각하고, 또 나아가 고령화 사회의 노인성 질환문제 등을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명자원과학대학도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새롭게 학과를 개편했습니다. `건강, 생명, 환경'을 대표하는 강원도의 지역특성에 맞춰 환경과 지역농민중심의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친환경유기농업을 연구하는 유기농 생태학과, 식품가공유통학과 등을 신설했습니다. 한강수계를 보면, 상류는 강원도 영월, 정선, 평창, 홍천, 횡성, 원주에서 유입되는데, 이들의 오염을 막기 위해선 유기농,유기축산으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 강원도 농민의 유기농 식품을 애용하고 많이 주문해달라는 말씀이시죠.
  국민의 식수를 깨끗하게 해주는 대신 농민도 살리고, 환경도 살릴 수 있는 친환경유기농업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유기농산품의 판로를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주민들이 유기축산을 시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금문제입니다. 또한 유기축산에 대한 교육도 미비한 것이 현실입니다.
  - 휴가시즌으로 올해에도 동해에서 피서를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데요. 관광부문에 있어서는 어떤지요.
  강원도는 생명사상과 생활협동조합 운동의 발상지입니다. 농촌이 환경,생태,문화,역사,전통,먹거리 등을 묶어 어메니티(amenity: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갖가지 일과 즐거움, 문화시설)를 형성해야 합니다. 農,山,漁村의 어메니티와 도시의 웰빙수요가 만나면 도시민들은 언제라도 가족들과 함께 쾌적한 환경과 청정식품이 생산되는 농촌을 찾아올 것입니다.
  - 우리 사회에 1社1村운동이 학교별로 확산되면서 대학과 농촌마을이 결연하는 1校1村운동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데요.
  2년전 당시 전경련 玄明官상근부회장께 아이디어를 제안했죠. 그래서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이러한 활동을 펼쳐야 된다고 생각해 저 역시 원주시 호저면의 여섯 개 농촌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무료진료활동, 유기농업 교육 등 교수와 학생이 직접 나서서 지원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최근 서울대의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제도를 놓고 정부와 전면대치 하다 여론이 서울대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면서 잠시 잠잠해졌습니다만, 대학 선발, 자율권, 재정 문제에 대한 金총장님의 견해를 피력해주신다면.
  우선 鄭雲燦총장님의 주장이 옳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인재를 선발해야지, 획일화된 방법은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솝우화에 소개되는 꼬리 잘린 여우처럼 자기의 꼬리가 잘렸다는 사실이 창피해 나머지 정상적인 꼬리를 가진 여우들에게 꾀를 부려 꼬리를 자르게 한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각 대학마다의 특성을 살려 인재를 길러야지요. 서울대는 그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고, 여타 다른 대학에선 그 특성에 맞게 신입생을 뽑아야 합니다.
  저 역시 대학총장으로서 당장 이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 대학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교수와 학생을 뽑고 싶습니다. 일례로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한의과대학의 입학시험에 한문한자 과목을 넣으면 더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유기농업관련 학과에는 농촌에서 농사짓겠다는 학생, 농어민 부모를 둔 학생 그리고 대안학교 출신 학생들을 추천받아야죠. 대학 선발은 전적으로 그 대학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그러면 이제 농업전문가로서, 그리고 전직 농림부 장관으로서 우리 나라 경제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올해도 경제가 매우 불안한 상황입니다. 농업과 관련해서 외국농산물 수입 급증과 쌀 시장개방 압력 등으로 국내 농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파고를 넘기 위한 대안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정부가 칠레, 싱가포르에 이어 세 번째로 유럽자유무역연합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었고, 쌀 시장 완전개방화에 대한 후속 조치로 올해부터 오는 2014년까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의 양을 매년 늘려야 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는데요. 협상을 할 때 얼마만큼 국가이익을 낼 수 있느냐는 문제는 그 나라의 협상능력과 외교력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이번 협상 내용을 보면 불합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은 또 농산물 관세율에 대한 재협상이 진행중입니다. 지난 95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쌀 이외의 모든 농산물을 개방했습니다. 쌀만이 제외돼 10년간 관세화 유예를 하기로 합의, 올해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재협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대비해 지난 98년 11월 11일 농민의 날에 친환경유기농업 정책을 선포하게 됐습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땅값이 비싸 생산비가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1백ha 이상을 소유한 외국 농가와 경쟁이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민을 살리려면 `품질과 안전성'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됩니다. 세계 각 나라가 앞다퉈 기존의 농법을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나라도 농가의 소득 향상을 꾀하고자 농림부에서 농약을 덜 사용하고 친환경 인증 농산물을 생산하는 정책을 펼치기로 한 것입니다.
  - 그런데 유기농업을 할 경우, 수요량을 커버할 수 있나요.
  가격을 낮추면 되는데, 이를 위해선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가의 초기 위험 부담을 줄이고 소득 보전을 위해 친환경 인증 농가를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는 직접지불제를 확대 실시해야 합니다. 친환경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과 비교해볼 때 유통경로는 다양하나 역시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러므로 홍보를 강화하고 유통 효율화 및 차별적 유통망 구축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와 유사한 조건에 있는 유럽의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에선 유기농업을 지원해주며, 직접지불제로 소득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용이 만만치 않은 유기축산, 유기농자재, 유기질 농약 등을 직접 개발, 농가에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하고 있어요.
  우리 나라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유기농 식품을 가공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규제를 풀어줘야 합니다. 농가에서 된장, 고추장 등을 만들어서 팔려고 하면 10억원 이상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하니 대기업만 배부른 꼴이 되는 거죠. 다른 규제는 풀어주면서 왜 우리의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공한 식품은 각종 식품위생법에 걸리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장관 재임 당시, 농,축협을 통합하여 수세폐지를 이뤄냈으며, 친환경농업 관련 법안과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등 `농정개혁'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계신데요.
  능력에 비해 너무 큰 관직이라 그 기간동안 제 역할을 다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농어촌진흥공사, 농지개량조합,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등 3개 기관을 농업기반공사로 통합하면서 구조조정을 감행했는데 지금도 그 분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IMF 상황에서 농민들은 허덕이고 있는데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품을 빼고 군살을 줄여 서로간에 조금씩 양보해야 살 길이 보였으니까요.
  통합하고 난 뒤 수세를 폐지했습니다. 수세를 내지 않는 대신에 농업기반공사에선 물의 양을 조절, 물을 낭비하지 않게 되고, 농업기구를 하나로 통합, 기존 직원들의 처우와 복지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에겐 저금리 대출과 일부 비료 무료 제공 등 여러 혜택이 돌아가게 됐죠.
  농업기반공사를 탄생시키고 수세를 폐지하니 동해에선 산불이 나고, 서해에선 구제역이 발생하는 등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잇몸염증이 심해져 처음엔 위에 이빨 4개, 그 다음엔 아래 이빨 5개가 몽땅 빠지더군요. 임시 틀니를 하고 출근하는데 도저히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사표를 내고 장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났죠.
  - 모교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지요. 특별히 金총장님께서 농업경제학과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요.
  선친께서 일제시대부터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하셨습니다. 독립운동가로 분류돼 4년간 옥고를 치르셨어요. 그래서 가족과 함께 만주로 피신해 생활했는데 해방이 되니까 배를 타고 무작정 3․8선을 건넜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선친께서는 농촌운동을 계속하셨고, 저 역시 청소년 농촌학습단체인 4H(head,hand,heart,health)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처음엔 농민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열심히 준비했는데, 대학입시를 앞두고 머리도 식힐 겸 부친께서 무전여행이나 갔다 오라고 용돈을 조금 주시더군요. 며칠동안 여행하면서 농촌과 농민들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는 농업전문가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입학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전공을 바꾸게 됐죠.
  - 대학시절, 전통적 이념서클인 `한얼'을 조직하고 70~80년대 그 유명한 `3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로 시작하는 농민가를 작사하셨는데요.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담을 소개해주시죠.
  이념서클을 만들긴 했는데, 이념적인 색깔이 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졸업 후 정말 농촌을 위해 봉사할 각오(?)가 돼있는 학생들을 모아 농사단을 조직했습니다. 그런 뒤 우리의 뜻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노래로 탄생한 것이 농사단가입니다.
  졸업 후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 교수로 막 부임할 때 즈음, 反독재 투쟁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서울의 각 대학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어요. 1975년 4월 11일 `한얼' 회원이자 축산학과 재학생이던 김상진 군이 모교 농대 교정에서 할복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농사단가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이후 `농민가'로 바뀌었습니다.
 

- 金총장께서는 `선진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동안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모두 나름대로 공을 세웠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그래서 21세기에 한국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선 이들을 뛰어넘는 `선진화 세력'이 형성돼야 한다고 생각해 최근 `선진화정책운동'이라는 단체를 출범시켰습니다.
  영국은 CCC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표방해왔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첫째 Common sense, 즉 상식적인 입장에서 먼저 해결하고, 둘째 Conference, 토론과 대화를 통해 대안을 찾습니다. 그것도 안되면 Compromise, 조금씩 양보해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중국정부 역시 求同存異, 이견은 일단 미뤄두고 의견을 같이하는 분야부터 협력한다라는 실리추구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왜 우리 나라는 100이 아니면 무효고, 전무가 아니면 전부고, 흑이 아니면 백이어야 합니까.
  - 여러 가지 직함들을 갖고 계시니 매우 바쁘실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책과 건강 유지를 위해 특별히 하시는 운동, 취미활동이 있으신지요.
  시민운동, 농민운동도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자신 있어하고 또 좋아하는 분야에서 내 시간과 돈을 내고 참여하는 것이 심신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건강에는 해로우나 엽연초 생산 농가들을 생각해서 담배를 피웁니다. IMF시절 엽연초 생산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모두 망연자실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엽연초를 피우겠다고 농민들과 약속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엽연초를 애용합니다.
  - 아호가 農薰과 月浦, 두 개인 것으로 압니다. 각각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農薰'은 대학시절 농촌운동하면서 한얼서클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고, `月浦'는 1987년 柳達永선생께서 특별히 지어주신 겁니다. 3년 동안 FAO(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 경제책임자로 활동하다 귀국, 미국 유학시절부터 수집해온 세계 각지의 조개와 고동류 등 4천3백여 점을 전남 목포에 있는 향토박물관(현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더니 은사께서 그 뉴스를 보시고 `달이 높이 떠서 자애로운 빛이 포구에 가득하구나' 하시며 `月浦'라고 지어주시더군요.
  - 마지막으로 평소 동문의 한 분으로서 서울대 총동창회에 대해 생각하시는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수원캠퍼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학과동창회와 농대동창회에는 지원도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나 총동창회에는 많은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총동창회가 전체만 생각하지 말고, 각 단과대학과 학과동창회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해주는 동시에 이들의 각종 행사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도와줬으면 합니다. 또 모교와 연계해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단기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설해 졸업 후에도 동문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동문들께서 더 큰 보답으로 모교와 동창회에 대한 은혜를 갚지 않을까요?
〈정리 = 表智媛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