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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2004년 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2남1녀·사위 모두 학자·공학도로 `맹활약'

"부지런히 대비하고, 근검 절약하며 삽니다"

장남  崔 勳(67년 工大卒)   대우건설 부사장 차남  崔 學(71년 工大卒)   주한 영국대사관 상무관 장녀  崔 璇(74년 文理大卒)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사위  李正馥(67년 文理大卒)   모교 정치학과 교수 과거에는 공대라고 하면 최고의 대학이자 최고의 인재들만 모인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또 졸업생들은 큰 걱정 없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각 대학에서는 이공계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정부에서는 이공계 졸업생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에 발벗고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도 공학도로서 자기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문 가족이 있다.  崔 雄(48년 工大卒·모교 응용화학부 명예교수)동문의 2남1녀 중 장남 崔 勳(67년 工大卒·대우건설 부사장)동문은 토목공학과 출신이고, 차남 崔 學(71년 工大卒·주한 영국대사관 상무관)동문은 부친의 뒤를 이어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또 문리대 출신인 장녀 崔 璇(74년 文理大卒·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동문과 사위 李正馥(67년 文理大卒·모교 정치학과 교수)동문 내외는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崔 雄동문은 일제강점기 시절, 흥남 비료공장에서 기술자로 성공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해방 후 모교에 몸담으며 평생동안 훌륭한 제자를 양성하는데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껴왔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며 쉬는 시간에도 책을 보거나 공부만 하는 전형적인 학자 타입이라 집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는 어떠한 작은 일이 주어지더라도 부지런히 대비하여 최선을 다하고 근검 절약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별로 해준 것은 없으나 말보다는 이러한 당부들을 몸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며 덕분에 자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가족들과의 즐거운 추억거리는 없지만 수학 실력이 뛰어났던 崔동문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집에서 세 아이들을 앉혀 놓고 직접 수학을 가르쳤다. 문제를 못 풀면 호되게 야단치거나 얼굴 붉히는 일도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 가족들과 옛 시절을 회상할 때면 당시 수학 선생으로 분했던 崔 雄동문이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들을 가장 많이 떠올린다고.  崔 雄동문과는 달리 장남 崔 勳동문은 공부보다는 취미생활을 즐기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특히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바둑실력은 「제1회 대학생 바둑대회」 국가대표, 경기고동창회 기우회 회장 등을 맡을 정도로 프로급 수준을 자랑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는 뒷전이고 바둑에만 심취해 있던 장남을 보다 못한 崔 雄동문은 바둑판을 도끼로 쪼개거나 바둑판과 동그라미가 그려진 노트들을 자주 태워버려야 했다고 한다.  69년부터 35년간 건설부문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崔 勳동문은 그 중 30년을 꼬박 해외에서 생활했다. 3백40km에 이르는 보츠와나 도로 준공, 라오스 댐 건설, 이란 철도공사 등 그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과 황무지 그리고 밀림 한 가운데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왔다.  어릴 적부터 음악과 미술에 능해 재주꾼으로 불리웠던 차남 崔 學동문은 친구관계도 두터워 때로는 엉뚱하다 싶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가족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또 어린 시절 꾸중을 들을 때 형 옆에 서 있는 바람에 따로 혼나는 일이 별로 없어 다른 형제들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모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崔 學동문은 GM 수석연구원, 삼성 이사, 벤처회사 사장 등을 거쳐 현재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investment officer로 활동하고 있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장녀 崔 璇동문은 모교에서 대학잡지 「향연」 편집기자로 활동하며 문학가의 꿈을 키웠으나 독일 베를린에서 돌연 노어노문학 박사학위를 취득, 현재 고려대에서 노어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崔 雄동문은 사위 李正馥동문을 소개하면서 『같은 캠퍼스에서 근무하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조용한 성격과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면이 나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밖에 李동문은 그동안 모교 대학신문 주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한국정치연구소 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崔동문은 『우리 가족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한 분야를 열심히 좇아가고 파고들어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