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호 2005년 8월] 뉴스 모교소식
韓格富동문, 의대에 5억 기부
흉부외과학 발전 당부 쾌척
국내 흉부외과학의 개척자 韓格富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사진)은 노환으로 힘겹게 투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30일 모교 의과대학(학장 王圭彰)에 현금 5억원을 기부했다.
노환과 장 파열로 올해 4월부터 모교 분당병원에 입원해 있는 韓동문은 언제부터인가 흉부외과학이 `기피 학과'가 돼버린 현실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오랜 기간 조금씩 돈을 모아왔으며, 60년 지기인 모교 의대 朱槿源명예교수와 장남 韓秀煥씨를 통해 자신의 오랜 소망을 실천했다. 이날 오후 3시 모교 분당병원 3층 대회의실에서 의대 王圭彰학장, 모교 병원 成相哲원장, 흉부외과 金周顯교수와 安 赫교수, 분당병원 姜興植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韓秀煥씨가 현금 5억원을 전달했으며, 곧 1억원을 분당 병원에 기부하겠다는 약정의 뜻도 함께 전했다. 초대 대한흉부외과학회 회장을 지낸 韓格富박사는 1913년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나 1941년 모교 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1947년부터 모교 의대 교수를 역임하다 6․25전쟁 후 수복 당시 모교로 돌아오지 않고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며 부산대 의대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같은 기간 부산 스웨덴적십자병원 흉부외과 과장을 역임했으며, 국립의료원 개원 당시 상경해 1959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의료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봉직했다. 또 韓동문은 1962~1964년 서울특별시의사회장, 1970~1972년과 1976~1979년 두차례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의료보험제도 및 의료보험수가 제정작업, 우리 나라 의료사상 최초의 국제 의학행사인 제7차 아세아대양주의학협회연맹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당시 험난했던 의료계 난제를 타고난 근면성과 강직한 신념으로 해결해냈다. 이후 1978년부터 20여 년간 서울시립노인요양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成相哲원장은 이번 일로 보다 많은 젊은 의사들이 흉부외과에 도전해 학문의 꽃을 피우고, 많은 생명을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말씀을 못하시면서 후학들을 위해 큰돈을 내놓은 韓박사님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환과 장 파열로 올해 4월부터 모교 분당병원에 입원해 있는 韓동문은 언제부터인가 흉부외과학이 `기피 학과'가 돼버린 현실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오랜 기간 조금씩 돈을 모아왔으며, 60년 지기인 모교 의대 朱槿源명예교수와 장남 韓秀煥씨를 통해 자신의 오랜 소망을 실천했다. 이날 오후 3시 모교 분당병원 3층 대회의실에서 의대 王圭彰학장, 모교 병원 成相哲원장, 흉부외과 金周顯교수와 安 赫교수, 분당병원 姜興植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韓秀煥씨가 현금 5억원을 전달했으며, 곧 1억원을 분당 병원에 기부하겠다는 약정의 뜻도 함께 전했다. 초대 대한흉부외과학회 회장을 지낸 韓格富박사는 1913년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나 1941년 모교 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1947년부터 모교 의대 교수를 역임하다 6․25전쟁 후 수복 당시 모교로 돌아오지 않고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며 부산대 의대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같은 기간 부산 스웨덴적십자병원 흉부외과 과장을 역임했으며, 국립의료원 개원 당시 상경해 1959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의료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봉직했다. 또 韓동문은 1962~1964년 서울특별시의사회장, 1970~1972년과 1976~1979년 두차례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의료보험제도 및 의료보험수가 제정작업, 우리 나라 의료사상 최초의 국제 의학행사인 제7차 아세아대양주의학협회연맹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당시 험난했던 의료계 난제를 타고난 근면성과 강직한 신념으로 해결해냈다. 이후 1978년부터 20여 년간 서울시립노인요양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成相哲원장은 이번 일로 보다 많은 젊은 의사들이 흉부외과에 도전해 학문의 꽃을 피우고, 많은 생명을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말씀을 못하시면서 후학들을 위해 큰돈을 내놓은 韓박사님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