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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023년 3월] 뉴스 본회소식

“코로나 백신 못 만든 한국, 뭐가 문제인지 고민해야”


수요특강

“코로나 백신 못 만든 한국, 뭐가 문제인지 고민해야”




임재준(의학88-94)
모교 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기초학력 저하되고 불평등 심화돼
‘코리아 R&D 패러독스’ 해법도 숙제

마스크를 벗었다. 여행도 떠난다. 진정한 봄이 온 걸까? 국내에서 누적 3000만명을 확진시킨 코로나19가 물러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잔기침은 쉬이 멎지 않을 모양이다. 2월 22일 공덕역 본회 장학빌딩에서 열린 본회 수요특강에서 임재준 모교 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코로나가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친 영향들을 짚었다.

감염성 호흡기 질환 전문가인 임 동문은 모교 국가미래전략원에서 팬데믹 연구 클러스터를 이끌며 팬데믹의 사회적 영향을 전방위적으로 분석해 왔다. 임 교수와 더불어 과학학, 산업공학, 보건, 서양사, 식품영양, 언론정보, 교육학 전공 교수 8명이 학제의 벽을 넘어 함께 연구하고 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그 연구의 결실로서 코로나 전후의 변화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코로나19는 가뜩이나 줄어드는 혼인과 출산 감소세를 부채질했다. “1000명당 혼인 건수인 ‘조혼인율’이 2019년 4.7건에서 2020년 4.2건, 2021년 3.8건으로 줄어듭니다. 젊은 친구들이 원래 결혼을 안 해서일 수도 있지만요. 한 명의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산되는 ‘합계출산율’은 2.2명이어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 2021년 0.81명이 됐어요. 팬데믹의 영향이 아닐 수 없죠.” 이어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늘었다”는 말은 충격을 안겼다. “2019년 1만4000건에서 2021년 2만6000건으로, 특히 가정 내 아동학대가 확 늘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부모들이 아이하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에요.”

코로나19는 아이들의 발달에도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 가지 못해 생긴 학습 결손은 곧 학력 저하로 이어졌다. 정부가 중3과 고2 학생의 국어, 수학, 영어 학력을 평가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2019년에 비해 2021년에 전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고2 학생들은 국어 4.0%에서 7.1%, 수학 9.0%에서 14.2%, 영어 3.6%에서 9.8%로 눈에 띄게 늘었다. “걱정인 것은 읍면 지역 거주 학생들이 대도시 학생들보다 기초학력 미달이 더 늘었습니다. 하위권의 학력은 내려가고, 상위권은 오히려 오른 것도 특이해요.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아이들은 인터넷도 잘 되고, 자기 방도 있고, 과외도 받을 수 있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집에서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청소년 비만율도 증가해 100명 중에 13.5명의 아이들이 비만이다. 코로나를 전후로 중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나빠졌다는 지표도 나왔다. “입시 준비는 학원이 더 잘할 수 있어도, 여전히 아이들이 성장하는 곳은 학교입니다. 선생님과 소통하고, 친구들과 뛰어놀고, 갈등을 빚고 화해도 하면서 정신과 몸이 튼튼해지는 겁니다.”

임 동문은 경제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잘 버텼다”고 평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국가별로 GDP증가율, 경제구조 등을 놓고 각국의 장기 경제 손상 정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가장 취약성이 적은 나라로 꼽혔다. 반면 필리핀, 인도, 스페인, 프랑스 등은 취약한 나라로 꼽혔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이 심해졌습니다. 고소득층은 그대론데, 저소득층의 직장 유지율이 8.4%나 감소했어요. 하위 20%인 1분위와 상위 20%인 5분위 간 차이인 소득격차는 4.76배에서 코로나 이후 5.23배로 늘었고요. 소유 부동산 규모로 본 자산 격차도 142배에서 251배로 늘었습니다.”

팬데믹이 남긴 생각거리들도 소개했다. 첫째는 ‘방역과 인권’ 사이 딜레마다. 강력한 통제는 감염 확산을 막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필연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었다. “방역조치가 나올 때 유럽 신문 1면에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였어요. ‘방역과 통제가 지향하는 생명의 보호가 바로 그 조치로 파괴될 수 있다’, ‘그러면 용기를 내서 평상시처럼 행동하다가 끝내 위엄을 지닌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 국내에선 이런 토론이 이뤄진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봐야 할 문제 아닐까요.” 임 동문 또한 확진자 동선 추적과 공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2020년 5월, 한 일간지 칼럼에 이렇게 썼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거짓말이 박멸되고 비밀이 퇴치된 ‘멋진 신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또 하나는 여실히 드러난 ‘코리아 R&D 패러독스’다. 미국, 유럽, 중국, 인도에서 만든 백신을 한국은 내놓지 못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가 적지 않은데, 이노베이션이 없어요.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거죠. 더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 교육 제도를 포함해 무엇을 개선하고 개혁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엔 희망의 씨앗도 분명 숨어 있다. 임 교수는 중세 시대 그림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뚜렷한 입체감으로 중세의 종말을 보인 지오토의 ‘오니산티 마돈나’였다. “50년 후 페스트 시기 제대화를 보면 밋밋한 중세풍 그림으로 퇴보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페스트는 유럽의 경제, 사회, 문화를 바꿨죠. 성직자들의 죽음을 목도한 유럽인들은 신앙보다 과학, 의학, 이성에 주목했고, 인문주의와 르네상스가 도래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천재들이 나타난 배경이다. “위기는 기회죠. 비록 코로나 팬데믹이 인류에게 여러 상처를 남겼지만, 우리가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상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본회는 모교 사회대 교수 7인이 팬데믹 이후 뉴노멀 트렌드를 주제로 쓴 책 ‘세븐 웨이브’를 이날 참석자 전원에게 선물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