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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2004년 2월] 기고 감상평

의식개혁 가져오는 작은 씨앗되길

사회 주요 쟁점에 대한 동문의견 수렴·해결안 제시해야
「동창」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학창시절에 대한 애틋한 추억으로서, 젊은 날의 꿈과 희망, 고민과 좌절 등 그 시절에는 누구나 겪게 되는 성장의 진통을 이제는 담담히 되돌아보면서 「기쁜 우리 젊은 날」로 되돌아 가보는 것도 그런 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개인적 감상 외에도 「동창」하면 느끼게 되는 또 다른 의미는 일종의 소속감 내지 연대감이라 하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하물며 온갖 무한한 가능성이 앞에 펼쳐진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며 그에 대한 연대감을 느낀다는 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매달 동창회보를 받고 동문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직접 아는 동문이 아니더라도 반갑게 느껴지고,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들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창회보가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기준보다는 「사회적 존경」이라는 잣대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그에 해당하는 동문을 더 많이 찾아내어 소개했으면 하는 바람을 느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미개척 분야에서 묵묵히 연구, 정진해 나가는 동문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봉사 분야에 투신한 동문들을 비춤으로써, 그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건재할 수 있고 보다 나은 미래를 희망해 볼 수 있음을 알게 해주면 어떨까 한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는 거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나마 성원을 보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존경받는 동문이 많아질수록, 서울대가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걸맞는 역할을 다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하는 진정한 엘리트의 산실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가지 더 바란다면 동창회보가 한달에 한번 한정된 독자층을 상대로 발행되는 신문이라는 제한성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여러 가지 주요 쟁점들에 대해 동문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지면을 넓혔으면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난제 중의 난제이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교육개혁 문제에 관해 동문들의 의견을 폭 넓게 수렴하고 가능하면 토론과정도 거쳐 하나의 정리된 의견을 제시해 보는 것도 동창회보가 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동문의 투고 등 직접적인 참여 없이도 사회적 쟁점을 다룰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는 편집진의 기획기사 연재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가끔씩 얘기되는 「Noblesse Oblige」같은 주제가 적합할 것 같다. 동창회보가 이미 싣고 있는 특정 동문에 관한 기사 외에도, 역사를 통해 이미 보편화된 교훈적 사례들을 찾아서 싣는다면, 「누가」 라는 측면보다는 「어떻게」 라는 일반성을 띠게 되어 더 가슴에 와 닿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로댕의 조각 작품으로 잘 알려진 1백년 전쟁 배경의 칼레의 시민 지도자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거나 자주 인용하고 있지만, 진부하다는 느낌 대신 그 시대를 뛰어 넘어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케 하는 숙연한 감동을 준다.  더구나 서양뿐 아니라 우리 나라 역사 속에도 Noblesse Oblige의 훌륭한 전통이 이미 몇 백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어떤 학자의 책을 감명 깊게 읽으면서 이런 사례들이 널리 알려지면 참 좋겠다고 느꼈던 몇 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배우고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 할 수 있는 서울대 동문들을 독자로 하는 동창회보에 이러한 내용들을 발굴하고 연재함으로써,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조용한 의식개혁을 가져오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다면, 동창회보가 동문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통상적인 소식지의 범위를 넘어 일정 부분 사회적 기여를 하는 의미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