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호 2004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정부 역할 변화에 민감한 경제 기사들
"8년 전과 달리 공무원 말 듣고 기사 쓰면 백발백중 오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선 정부를 빼놓고선 경제를 말할 수 없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데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젊고 효율적인 공무원 조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공무원의 역할이나 위상도 크게 변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경제기자를 10년 한 필자조차 적응이 안 될 정도다. 정부 위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옛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합친 막강 재정경제원을 출입하던 96년 봄이었다. 암호문에 가까운 보도자료와 씨름하다 도저히 해독이 안 돼 담당 과장의 방을 찾았다. 뭔가 열심히 문서작업을 하던 A과장은 기자가 들어서자 황급히 보고 있던 문서를 뒤집어 놓았다. A과장의 놀라는 모습으로 보아 그 문서는 매우 중요한 서류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 문서를 볼 수 있을까. 사회부 기자라면 체면 몰수하고 문서를 들고 냅다 도망갈 터. 그러나 경제부에서 그런 식으로 취재하다간 「사이비 기자」로 찍혀서 기자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한참 원래 물어보려고 했던 보도자료 얘기를 하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문서의 뒷면으로 글씨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나 뒤집어 놓은 문서의 뒷면으로 보일 듯 말 듯한 글자를 해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때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어디선가 A과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A과장은 전화통을 붙잡고 한참 동안 상대방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A과장의 손아래 있는 문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眼光이 紙背를 徹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니랴. 글씨를 거꾸로 읽는다는 게 그렇게 현기증 나는 일인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문제의 서류는 재경원이 향후 두 달 동안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정리한 로드맵이었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된 부총리에게 보고하기 위한 자료였던 것이다. 내용 중에는 업계에서 끈질기게 반대해온 사안도 포함돼 있었다. 「저게 재경원이 계획한 대로 다 실천에 옮겨질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반신반의할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내용을 거의 다 파악할 무렵 A과장이 전화를 끊었다. 혹시 외운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갑자기 회사에서 찾는다고 둘러댄 뒤 황급히 A과장의 방을 나왔다.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손바닥에 내용을 옮겨 적었다. 이후 두 달 동안 필자는 느긋하게 지낼 수 있었다. 잊을 만하면 한 건씩 곶감 빼먹듯 그때 본 내용을 쓰면 그대로 특종이 됐다. 놀랍게도 다섯 건에 이르는 정책이 당시 재경원이 계획한 내용 그대로 그 시기에 실천에 옮겨졌다. 과장급 재경원 공무원 한 명에게서 얻는 정보가 업계 최고경영자 열 명을 취재해서 얻는 것보다 많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8년이 흐른 올해 초. 금융단을 출입하게 된 필자는 연초부터 LG카드 자금위기 때문에 연일 자정 넘어서까지 기자실을 지켜야 했다. 협상이 엎치락뒤치락 해 기사 방향을 수시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었다. 8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점은 공무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기사를 썼다간 백발백중 오보를 낸다는 사실이었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부터 하나은행이나 우리은행이 LG카드를 인수해갈 것이라는 얘기를 흘렸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기사를 썼던 수많은 신문과 방송은 결과적으로 모조리 오보를 냈다. 재경부와 금감원이 아무리 은행장들을 「겁박」해도 공무원들의 말은 씨도 안 먹혔다. 심지어 金振杓부총리와 李晶載금감위원장까지 나서서 『은행들이 자기 몫 챙기기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었지만 은행장들은 꿈쩍도 안 했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공무원의 역할이나 위상도 크게 변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경제기자를 10년 한 필자조차 적응이 안 될 정도다. 정부 위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옛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합친 막강 재정경제원을 출입하던 96년 봄이었다. 암호문에 가까운 보도자료와 씨름하다 도저히 해독이 안 돼 담당 과장의 방을 찾았다. 뭔가 열심히 문서작업을 하던 A과장은 기자가 들어서자 황급히 보고 있던 문서를 뒤집어 놓았다. A과장의 놀라는 모습으로 보아 그 문서는 매우 중요한 서류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 문서를 볼 수 있을까. 사회부 기자라면 체면 몰수하고 문서를 들고 냅다 도망갈 터. 그러나 경제부에서 그런 식으로 취재하다간 「사이비 기자」로 찍혀서 기자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한참 원래 물어보려고 했던 보도자료 얘기를 하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문서의 뒷면으로 글씨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나 뒤집어 놓은 문서의 뒷면으로 보일 듯 말 듯한 글자를 해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때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어디선가 A과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A과장은 전화통을 붙잡고 한참 동안 상대방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A과장의 손아래 있는 문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眼光이 紙背를 徹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니랴. 글씨를 거꾸로 읽는다는 게 그렇게 현기증 나는 일인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문제의 서류는 재경원이 향후 두 달 동안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정리한 로드맵이었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된 부총리에게 보고하기 위한 자료였던 것이다. 내용 중에는 업계에서 끈질기게 반대해온 사안도 포함돼 있었다. 「저게 재경원이 계획한 대로 다 실천에 옮겨질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반신반의할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내용을 거의 다 파악할 무렵 A과장이 전화를 끊었다. 혹시 외운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갑자기 회사에서 찾는다고 둘러댄 뒤 황급히 A과장의 방을 나왔다.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손바닥에 내용을 옮겨 적었다. 이후 두 달 동안 필자는 느긋하게 지낼 수 있었다. 잊을 만하면 한 건씩 곶감 빼먹듯 그때 본 내용을 쓰면 그대로 특종이 됐다. 놀랍게도 다섯 건에 이르는 정책이 당시 재경원이 계획한 내용 그대로 그 시기에 실천에 옮겨졌다. 과장급 재경원 공무원 한 명에게서 얻는 정보가 업계 최고경영자 열 명을 취재해서 얻는 것보다 많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8년이 흐른 올해 초. 금융단을 출입하게 된 필자는 연초부터 LG카드 자금위기 때문에 연일 자정 넘어서까지 기자실을 지켜야 했다. 협상이 엎치락뒤치락 해 기사 방향을 수시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었다. 8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점은 공무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기사를 썼다간 백발백중 오보를 낸다는 사실이었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부터 하나은행이나 우리은행이 LG카드를 인수해갈 것이라는 얘기를 흘렸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기사를 썼던 수많은 신문과 방송은 결과적으로 모조리 오보를 냈다. 재경부와 금감원이 아무리 은행장들을 「겁박」해도 공무원들의 말은 씨도 안 먹혔다. 심지어 金振杓부총리와 李晶載금감위원장까지 나서서 『은행들이 자기 몫 챙기기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었지만 은행장들은 꿈쩍도 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