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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2005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취재원 `황우석'에 대한 두 가지 단상

두말 할 것 없이 기자의 `존재이유(raison d'etre)'는 기사를 쓰는 것.  하지만 필자에겐 기사작성을 포기하고 다른 기자들의 기사작성까지도 `방해'하는 등 `반(反)기자적 행동'을 한 것이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화가 있다. 최근 서울대 黃禹錫교수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결과로 한국인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 필자의 머리 속에는 안도감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 `적어도 뛰어난 과학자의 앞길을 망치는 일은 용케 피했구나'라는 생각에서다.  필자는 지난 2000년 5월부터 1년 가까이 서울대 출입기자로서 黃교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黃교수는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킨 유전공학자로 널리 알려진 `스타교수'였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 호랑이 복제 연구 등 기발한 연구활동으로 출입기자들에겐 서울대 총장보다도 비중 있는 인물로 간주될 정도였다.  黃교수의 대(對) 언론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지난 2001년 2월. 광우병이 세계 도처에서 발생, 인류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던 어느 날 필자는 黃교수를 만나 광우병 대책에 대해 취재를 한 바 있다. 실험복 차림으로 필자를 맞이한 黃교수는 󰡒앞으로 3~5년 안에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가 탄생하는 등 광우병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광우병에 관여하는 소의 유전자로 `프리온'이라는 특이단백질이 확인됐는데, 유전자조작을 통해 저항성을 갖게 한 뒤 유전자를 소의 체세포에 적중해 배양, 이 세포로 수소와 암소를 복제해 2세를 낳으면 선천적으로 광우병에 저항성을 가진 송아지가 탄생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적 가설일 뿐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黃禹錫교수가 말했다󰡓라는 사실이 유일했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워낙 컸던 터라 필자는 `황우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믿고 이를 기사화 했고 사회적으로 적잖은 관심과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黃교수는 지난 2003년 12월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광우병 내성소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  黃교수의 연구활동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할 뻔한 일도 있었다.  2000년 어느 초가을 날, 黃교수는 교수로서 또 연구자로서 중대한 위기에 처한 일이 있다. 평소 신중하고 조리 있는 말솜씨를 보여온 黃교수가 난데없이 성희롱 발언 논란에 휩싸였던 것이다. 黃교수가 서울대 자연계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유전공학 특강 중 복제양 돌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돌리'라는 이름은 미국의 육체파 여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에게서 따온 것이라며 잠시 여담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몇몇 여학생들이 黃교수 발언으로 수치심을 느꼈다며 서울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등 강의내용을 문제삼고 나섰다.  黃교수는 󰡒오후 수업시간이어서 학생들의 졸음을 쫓기 위해 잠시 여담을 한 것 일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억울해하며 해명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해 당시 몇몇 기자들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기사화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시간이었고, 黃교수의 발언이 고의성을 가진 게 아니라는 黃교수 해명을 적극 반영하더라도 기사화될 경우 `후폭풍의 파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대학가 분위기로는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성희롱' 구설에 오르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불이익과 불명예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기사화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회사에도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기사화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다행히 타사의 동료․후배기자들도 대체로 이에 호응해줬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 만난 한 서울대 교수는 󰡒金기자와 당시 출입기자들이 오늘의 `황우석'을 만든거야󰡓라면서 󰡒黃교수에게도 그 때 일이 큰 교훈이 됐을 걸󰡓이라고 말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그 일은 필자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됐다. 매일매일 기사를 위한 기사를 쓰는 기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 진정한 기자정신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단순한 사실 그 너머에 있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  이제 `프라이드 오브 코리아(Pride of Korea)'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한국의 대표 과학자가 된 黃교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