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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2005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북한 동포들의 눈망울 떠올리면 …

지난 1월 중순 1년 반만에 다시 북한땅을 밟을 기회가 왔다. 2003년 6월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 취재차 평양에 갔던 이후 처음으로 KBS가 북측과의 방송교류차 벌이던 협상에 보도본부 대표로 참석한 것이다. 협상은 개성에서 사흘간 출퇴근 협상으로 열렸다. 금강산과 평양, 개성, 신포 등 10여 차례 북한을 다녀왔지만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북관계가 뚫리기 전 도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비무장지대 한가운데로 시꺼먼 아스팔트 도로가 뚫렸고 풀숲에 가려 아스라하게 보이던 찌그러지고 녹슨 기관차를 눈앞에 두고 지나는 기분은 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감상보다 더 마음을 잡아끈 것은 역시 번듯한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지 않은 헐벗은 산하였고 그 추운 날 그 민둥산을 박박 긁고 있는 북녘의 동포였다. 여기 저기 때깔 좋은 남녘의 굴삭기들이 산을 허물고 흙을 지어 실어주는 개성공단의 건설 굉음소리도 악화된 핵문제로 감동으로만 다가오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개성시내를 돌면서 만난 많은 개성시민들의 힘빠진 모습과 하릴없는 어슬렁거림은 체제의 동력이 얼마나 고갈되고 있는지를 웅변하고도 남았다. 특히 북한에서 만나는 보통의 아이들은 우리를 너무나 슬프게 한다. 이번에 개성시내에서 스치듯 지나며 만난 열 두어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는 아직도 가끔씩 나의 마음에 나타나 맘을 휘저어 놓곤 한다. 며칠은 감지 않은 것 같은 밤송이 머리, 요즘 내 아이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터서 발그스레한 얼굴, 그리고 비스듬히 턱을 올려 우리를 보는 그 아이의 눈빛은 초점을 잃은 채 사그러들고 있었다.  지난 2002년 9월 추석을 계기로 남북이 평양에서 오케스트라 합동 공연을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또 중요한 행사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착공식이었는데, KBS에 단독으로 공개된 개성현장을 鄭仁錫기자와 함께 취재할 기회가 주어졌다. 벌써 3년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그 현장을 잊기 어려운 것은 개성역에서 있었던 축하 행사와 철로가 끊어진 현장에서 있었던 발파식에서 마주친 북한 동포들의 눈망울 때문이다. 특히 발파식에 나온, 물론 동원됐겠지만, 60은 넘은 듯한 할머니와 중학생 이상은 돼 보이는 아이들의 눈빛 때문이다.  환호하는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손을 내밀면 그냥 마주잡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지만 난 전혀 그러지 못했고 그런 맘도 가지질 못했다. 그들의 환호는 희열이 아닌 듯 했고 왠지 모를 피곤함과 체내화된 경계심과 체제에 대한 두려움과 우리에 대한 호기심이 뒤엉켜 있는 듯한 묘한 얼굴들, 눈빛들. 자기들끼리 조그맣게 두런거리는 듯한 아이들의 외면하는 모습에서 나도 서먹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한 개성시 인민위원장의 당당한 발언은 그의 것일 뿐이었지 나머지 `인민'들은 사실 입을 가지지 못한 게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들의 허름한 차림에서, 그늘진 얼굴에서 삶의 고뇌와 힘겨움을 능히 느낄 수 있었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특히나 이방인이 참석한 자리에서 그들의 불만을 한마디라도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취재팀은 `끗발 좋은' 북측 당국의 특별 안내를 받으며, 경적을 있는 대로 울리며 신작로 길을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쌩쌩 달려 다시 개성 자남산 여관으로 돌아왔지만 폭파 행사에 동원된 북측의 인민들은 그 먼지를 다 마셔가며 족히 4킬로미터는 되는 거리를 걸어서 되돌아 갔다. 그들은 돌아가는 무리 속에서 어떤 얘기들을 나눴을까.  필자가 만난 현장의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힘있는 사람들이었다. 당국자, 세관원, 군인, 안내원 등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들이었다. 남측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안내원들도 사실은 북한의 최고 엘리트들이다. 웬만하면 김일성대 출신이고 김형직 사범대, 김책 공대, 국제대 등을 나온 재원들이다. 언젠가 그들에게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이런 엘리트들이 남측 방문객을 안내하고 통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으니 체제 발전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런 머리들이 연구실에서, 생산 현장에서 힘을 쏟아야, 그런 정상사회로 돌아가야 북한에 미래가 있다. 이들 체제 유지 일꾼들의 눈빛은 일반 인민들에 비해 형형하게 살아 있지만 감시와 통제를 위한 것에 머무른다면 북한의 미래는 정말 기대하기 어렵다.  파격적인 원탁 회의와 남북 장관급 대표의 공동 기자회견으로 다시 한번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남북관계, 지금은 정말 핵문제를 푸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이후를 조용히 깊이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