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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2022년 11월] 문화 나의 취미

쾌걸 조로 따라하다 결국 칼을 들었다

22년차 펜싱인 이태호(치의학72-78) 미드치과의원 원장

쾌걸 조로 따라하다 결국 칼을 들었다



22년차 펜싱인
이태호(치의학72-78) 미드치과의원 원장



펜싱 도복을 입은 이태호 동문 (사진=이태호 동문 제공)


모교 펜싱부 감독 맡아 지도
“동문들 입문 언제나 환영”


이태호 미드치과의원 원장은 골프를 전혀 못 친다. 대신 검은 좀 휘두른다. 그는 22년차 아마추어 펜싱인이다. “어릴 땐 막대기로 칼싸움을 했고, 영화 쾌걸 조로를 좋아해 막연하게 칼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입문했다가 펜싱의 묘미에 푹 빠져버렸다”는 이 동문을 구로구 그의 병원에서 만났다.

이 동문은 김영호 중고펜싱연맹 회장을 만나면 고마움 반, 투정 반 섞어 이렇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시작한 거다, 책임지라’고. 한국 최초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김영호 회장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 펜싱 플뢰레 결승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을 때, 이 동문도 펜싱과 사랑에 빠졌다. 신문에 실린 동호회 주소로 무작정 찾아갔다가 ‘최고령 검객’이 됐다. 입문 9년차, 56세 나이에 젊은이들 제치고 서울시장기 대회에서 플뢰레 개인전 3위에 오르는 기염도 토했다. 서울시펜싱협회 부회장을 지내고 현재 강남구펜싱협회 회장, 서울대 펜싱부 OB 회장 겸 감독을 맡고 있다.

“웅크리고 일하는 치과의사에겐 더없이 좋은 운동입니다. 현대인은 휴대폰도, 컴퓨터도 다 웅크리고 하잖아요. 펜싱은 몸을 펴고 하는 운동이고 다리도 계속 움직이죠. 한여름에도 마스크 쓰고 도복 입으니 엄청나게 땀이 나고요. 한때 에어로빅을 했는데 3시간 해서 흘릴 땀이 펜싱에선 3분 만에 다 나와요. 스트레스 해소에 정말 좋지요.”

이 좋은 걸 늦게 시작한 게 억울해서일까. 그는 틈나는 대로 펜싱 전파에 앞장섰다. 병원 옆방을 가리키며 “한때 개인 연습실이 있었다”고 했다. 펜싱 연습을 하려면 바닥에 까는 길쭉한 경기대 ‘피스트’와 심판기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1500만원을 들여서 꾸몄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펜싱클럽 아니었을까요. 나도 쓰고 서울대 후배들도 와서 연습하라고 만들었죠. 치대에 ‘덴탈 팀’을 만들려고도 했지만 공부하기 힘드니 뜻대로 되진 않더군요.”

연습실은 2000년대 초반 서울대 펜싱부가 만들어지면서 닫았다. 창설 과정에 물론 이 동문이 참여했다. “김태진(경영00-07)이라고 서울대 이름으로 대회에 나온 후배가 있더라고요. 반가워서 얘기해보니까 일본에서 펜싱을 좀 배웠대요. 그 친구를 중심으로 펜싱부를 만들어보자고 얘기가 됐죠.”

펜싱부가 자리 잡고선 2014년부터 주1회 모교를 찾아 직접 지도한다. 코치 겸 감독이다. “우리나라 펜싱 역사는 연대, 고대에서 시작했어요. 일본 유학생들이 돌아와 각 학교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 70년 역사가 있죠. 서울대도 분발해야겠다 싶어 만든 거예요. 처음엔 신생 팀이라 운동할 데가 없어서 화장실 가는 복도에 피스트를 깔았습니다. 냉난방도 없어 여름엔 덥고 겨울엔 무진장 추웠죠. 지금은 신체육관 1층을 체조부와 같이 쓰고 있어요.”



이태호 동문이 지도하는 모교 펜싱부와 인사 동작인 ‘살뤼(Salut)’ 자세를 했다. 맨 왼쪽이 이 동문. (사진=이태호 동문 제공)



작년 도쿄올림픽 때 한국 펜싱팀의 선전으로 펜싱 붐이 일었다. 올해 봄 학기 100명, 하반기 40명이 입부를 신청했다. 90%는 펜싱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다. 이 동문은 “호기심에 시작하지만 힘든 운동이다 보니 계속 남아 있진 않다. 그래도 현재 20여 명이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 각종 대회 메달권에 들어가는 후배들이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정석으로 가르치면 몇개월 동안은 검을 잡지 않고 기본 자세만 익히죠. 저 또한 그렇게 배웠고요. 하지만 지금은 흥미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해서 처음부터 게임(대련)을 시킵니다. 기본기가 흐트러지고 나쁜 습관이 들 수도 있지만, 프로 아니고 취미잖아요. 우선 재밌게 운동하게 하면서 나쁜 습관은 고쳐주고, 때로는 나쁜 습관도 잘 이용해 점수를 얻는 방법을 찾아봐 주죠.”

그는 “아이비리그에선 펜싱과 아이스하키가 어드밴티지를 갖는다. 국내도 서울대뿐만 아니라 더 많은 대학에 펜싱부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희대, 서강대, 한국외대 등 타대 펜싱 동아리까지 물심양면 돕는 이유다. 강남구협회장배 펜싱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왔고, 이젠 “모교에서 전국 대학 펜싱 동아리가 참여하는 대학 리그를 열어보는 게 꿈”이다. 가능하면 펜싱 교양과목이 생겨 더 많은 학생들이 펜싱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 동문은 세간의 오해처럼 펜싱이 꼭 ‘귀족 운동’은 아니라고 했다. 웬만한 펜싱클럽은 공용 장비를 구비하고 있어 초보 때는 크게 돈이 들지 않는다. 모교 펜싱부도 펜싱화에 운동복 정도만 갖추고 연습하는 학생들이 많다. 위생을 신경쓰거나 대회에 출전하려면 개인용 도복, 마스크, 검 등을 구입하지만, 여느 운동에 진지하게 입문할 때 드는 비용과 비슷하다.



연습 중인 모교 펜싱부 (사진=이태호 동문 제공)


펜싱선수들 몸은 멍투성이라는데 위험하진 않을까. 모교 펜싱부에선 “펜싱 도복은 일정 강도의 충격을 견디고, 칼도 어느 정도 구부러져서 큰 부상은 극히 드물다. 다만 조금 아프고 살짝 멍 드는 경우도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검에 찔려서 위험한 것보다, 왔다 갔다 하면서 찌르는 동작이 많다 보니 무릎이 튼튼해야 합니다.” 성실하게 연습하다 보면 몸에 흔적이 남긴 한다. “한쪽 팔과 다리만 쓰다 보니 ‘짝궁둥이’ 되기 쉽다”며 그가 웃었다.

오른손잡이인 이 동문은 요즘 테니스를 하다 삐끗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검을 잡는다. 주종목도 에페로 바꾼지 오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효 타격 범위라 검도 가장 길고 특유의 묘미가 있다. 펜싱부 후배들이 만들어 준 도복 소매에 서울대 마크를 달고 뛴다.

펜싱이 생활체육인 유럽엔 비할 바 못 되지만 국내에도 펜싱 동호인이 꾸준히 1000여 명대를 유지해왔다. 초등학생 검객도 더러 보인다. 모교 펜싱부가 발전하면 관악구민과 함께하는 ‘관악펜싱클럽’이 될 수도 있다.

“서울대 펜싱부 문은 동문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다른 대학 학생도 가끔 찾아오는걸요. 펜싱 한번 해보고 싶은 동문님들,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 주세요.”

이태호 동문 연락처 golden_mask@naver.com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