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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2022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현대차, 미중 갈등 그리고 투키디데스


현대차, 미중 갈등 그리고 투키디데스



김성진
경영70-74
KOTRA 외국인투자옴부즈만


강대국 패권 다툼 원리 알면
대혼돈 속 선제적 대응 가능

지난 8월 미국에서 통과된 인플레감축법(IRA)에 의해 현지에서 판매되는 현대·기아의 전기차는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동안 판매량이 대폭 증가해 테슬라에 이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가격경쟁력에 타격을 입고 벌써부터 판매량이 줄고 있다.

5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해 우리 대기업들은 미국에 무려 50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으며, 현대차도 105억달러의 투자를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의선 회장에게 탱큐를 연발하며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을 우리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 정부 또한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및 반도체동맹(CHIP4) 참여, 한미군사훈련 재개 등 나름의 노력을 다했고, 한미간의 결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하다고 믿어왔던 터라, 이러한 조치가 나온 데 대해 일반 국민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필자는 미중 간의 갈등, 보다 정확히는 패권 다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반도에서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당시의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가 신흥국으로 무섭게 부상하던 아테네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이라고 갈파했다.

투키디데스의 통찰을 적용하면 그 후 발발한 여러 전쟁의 원인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체제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체제로 양분됐고, 둘 사이에 치열한 체제경쟁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1979년 중국을 끌어들여 미중수교를 맺었고, 1990년 소련은 해체됐다. 미국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지원하면 서구와 함께 갈 수 있는 체제로 변화되리라 믿었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 자유무역의 막대한 혜택을 받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는 것이 미국 내 주류세력의 판단이다. WTO 가입에 따른 이점은 모두 향유하면서도 내부 체제는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 설상가상 미국의 제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 갔고 일자리가 사라져 가면서 중산층의 불만은 높아만 갔다. 이를 배경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했고 미중갈등은 더 깊어졌다. 지난해 민주당의 집권 이후 미국의 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에 대한 시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미중갈등은 보다 깊어만 갔다.

WTO 가입 당시 미국의 12.6%에 불과했던 중국의 경제규모는 이제 78.6%에 달해 이미 늦었다는 인식도 없지 않으나,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조치가 불가피하게끔 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민주당 정부는 11월 초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2024년 재집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다.

패권국인 미국으로서는 이념과 체제가 너무 다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고, 단기적으로도 ‘중국 때리기’는 중간선거에 유리한 전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집권 이후 단행한 반도체과학법, 인플레감축법, 바이오이니셔티브 등 일련의 조치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나아가 미국은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의 공급망이 동북아시아에 집중돼 있는 것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한다. 얼마 전 미국 마이크론사가 뉴저지에 1000억달러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은 이러한 정책의 결과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인플레감축법에 대한 한국 측의 우려와 협의를 언급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일각에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및 한미FTA 협정 위반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미국은 WTO를 사실상 무력화시켰으며, 양자 FTA 협정도 필요에 따라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나라로 변해 버렸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중 간의 갈등은 지속되고 미국의 견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행정부, 의회 등의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로비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나라들과 공동으로 연대해 대응하는 것도 다자주의를 거부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에 대하여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큰 흐름을 예측하고 이에 맞게 우리의 행동을 선제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의 실력 배양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