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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2004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알코올 중독 심각한 에스키모 취재기

"만 21세 이상 성인으로 알코올 허가증 있어야 술 주문 가능"
배로우(Barrow) 공항의 트랩을 내려서자 찬 공기가 마구 파고든다. 2003년 연말, 알래스카 취재 엿새째 날 북미 대륙의 북쪽 땅끝마을 배로우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백인들 틈에서 한국인 비슷한 얼굴들이 두툼한 고어텍스 파카 사이로 이빨만 하얗게 드러낸 채 웃고 있다.
에스키모들이다. 배로우는 에스키모 도시이다. 4천3백명의 주민 가운데 60%가 에스키모로 알래스카에서 원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에스키모의 생활은 책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집마다 위성텔레비전 안테나가 세워져 있고 개썰매 대신 스노우 모빌이 굉음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다.  북극해 근처 유전에서 나온 이익의 일부를 알래스카 주정부가 기금으로 관리하면서 주민 1인당 1년에 1천2백~1천3백달러씩 그냥 나눠주는 데다 에스키모들이 만든 협동조합은 정부의 특혜가 집중돼 배당 이익이 많기 때문에 생긴 변화라고 했다.  취재도중 알코올 중독이 심각해 술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에 에스키모의 알코올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시청과 접촉해보니 원주민의 알코올문제를 외국언론, 특히 텔레비전 카메라가 취재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국도 알코올문제가 심각해 배로우의 독특한 제도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빈말로 설득한 끝에 간신히 알코올 배급소의 촬영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알코올 배급소는 동네 가운데 있었다. 주민들의 술 주문을 받아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같은 대도시의 술 도매상에서 일괄 구매한 뒤 주민들에게 전달해 주는 곳이었다. 만 21세 이상 성인으로 알코올허가증이 있어야 술을 주문할 수 있고 알코올의 양도 한 달에 맥주 몇 리터, 위스키 몇 리터 하는 식으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주민들이 찾아와 대금을 치르고는 주문했던 술을 차에 싣고 있었다. 한 주민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이런 제도가 불편하지 않습니까?』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싫으면 술을 끊거나 불법으로 수입된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을 만나 Dry town, 곧 술집 없는 동네의 연유를 물어봤다. 술 때문에 생기는 사회문제가 워낙 많아 골치를 앓던 중 주민투표를 통해 술집을 없애기로 결정했고 지금도 해마다 주민투표로 이 정책의 계속 여부를 정한다는 설명이다. 초기에는 술집은 물론 술의 반입조차 금지하는 극단적인 금주안을 밀어 부쳤으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도시에서 술이 밀반입 되고 위스키 1병이 시세의 10배인 1백달러 이상에 밀거래 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많아 결국 현재와 같은 「알코올량 통제」라는 중간선으로 수렴됐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은 계속 됐다. 『정책의 균형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주민투표를 해보니 한 해는 Dry town, 다음해는 Wet town, 그 다음엔 Dry town하는 식으로 오락가락했습니다. 주민들이 불편하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을 합의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지금도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허용량을 너무 줄이면 다음해 주민 투표 때 술집 전면허용 주장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에스키모들이 모여 술을 마신다는 집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촬영은 절대불가였다. 그들의 체면, 위신과 직결된 문제라 무리해서 촬영하지 않기로 했다. 포기하고 돌아 오는 길에 다른 집에서 술에 취한 채 몰려나오는 에스키모들과 우연히 마주쳤다. 차안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이들은 비틀거리며 차창으로 몰려들어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막았다. 그들의 몸에서 술 냄새가 짙게 풍겼다.  백인들은 에스키모들의 음주습관을 「끝장 볼 때까지 마신다」고 표현했다. 이전에는 이런 폭음 때문에 사망사고, 폭행사건, 가정 폭력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드라이타운 정책 덕분에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알코올 배급소에서 각자 술을 사가서는 한자리에 모여 바닥을 볼 때까지 마시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에스키모 사회에 알코올이 등장한 것은 백몇십년 전 백인들이 나타나 위스키와 모피를 맞바꾸면서부터라는 것이 현지의 통설이었다.  에스키모의 정체성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전문대학에서 에스키모어(이누피아트어)를 가르친다는 60대의 여교수는 『60대 이상 노인들만 에스키모어를 할 수 있고 40대는 겨우 알아들을 정도이며 그 아래는 조상말을 모른다. 젊은 층은 온통 텔레비전에 빠져 산다』고 말했다. 갈수록 에스키모들이 자신들의 뿌리와 언어마저 잊어버리고 있다는 개탄이었다.  자연이 준 대지 위에 그들 식대로 살던 이들이 물질적 풍요의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일찍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아니 이런 시각 자체가 배부른 제3자의 오만한 온정주의는 아닌지… 배로우에서의 3박4일은 물론 알래스카에서 보낸 열 엿새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덩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