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호 2004년 2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재외 한인문학 저변 확대 노력 필요
1920~30년대의 작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가중되는 일제의 침탈로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고국을 떠나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참담한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가들에 대해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한때 만주에 거주했거나 혹은 만주에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한 작가로는 崔曙海, 姜敬愛 등이 있었다.
이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천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재만한인문학은 없었을까 하는 곳으로 생각이 미치게 됐다.
일제강점기 재만한인문학에 관한 자료는 지금도 그렇지만 1970~80년대에 있어서는 求得하기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몇 명의 작가가 어떠한 작품을 어디에 발표했는지, 그러한 자료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선행 연구도 거의 없었으며 주위에 자문을 구할만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던 차에 필자의 연구에 활기를 띠게 한 계기는 1988년 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와 때맞추어 중국 연변에서 간행된 도서가 소개되기 시작했고, 또 그 해에 비록 일부였지만 만주에서 발행됐던 滿鮮日報(1939년 12월~1940년 9월분)가 국내의 한 출판사에 의해 영인 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과의 교신은 물론,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내왕까지 빈번해지면서 연변대학의 K교수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K교수와 필자는 연배도 비슷했고 다같이 일제강점기의 재만한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터여서 언제나 화제가 풍부했다. K교수는 창립직후의 연변대학에서 원로작가인 金昌傑선생(1991년 11월 22일 작고)의 강의를 들었을 뿐더러 지금도 가까이 모시고 있다면서 근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K교수는 필자가 金昌傑선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작품도 많이 구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자 「김창걸단편소설선집 - 해방 전편-」(1982년, 중국료녕인민출판사刊)을 보내주었다. 영인본으로 간행된 만선일보에는 金昌傑의 소설이 6편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더 많은 자료 확보에 고심하고 있던 차에 14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김창걸단편소설선집」은 필자의 재만한인문학 연구가 崔曙海, 姜敬愛, 安壽吉 등에 이어 金昌傑까지 확대되는데 큰 힘이 돼주었다. 그 뒤에도 K교수는 인편을 통해서라든가 한국에 올 때마다 각종 자료를 갖다 주어 金昌傑에 관한 한 필자는 적지 않은 자료를 갖출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필자는 1990년 「일제강점기 재만한국문학연구」라는 책을 간행하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재만한인문학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조그마한 시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완벽한 일제강점기 재만한인문학의 연구를 위해서는 각종 자료(시대적·사회적 배경에 관한 자료로는 관동군, 滿鐵, 괴뢰 만주국의 이주민 관계 자료, 문화적 측면의 자료로는 만선일보의 완질 확보와 실체 규명 및 각종 작품집의 수집, 작가 관계의 자료로는 인적 사항과 작품 연보 등)를 구비한 다음 각 작가별로 전 작품에 대한 치밀한 분석 작업과 함께 엄정한 평가 작업을 유기적인 연관 관계 아래 펼쳐 나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때 드높았던 재외한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요즘에는 좀 식은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우리 나라 현대문학사의 다양성과 저변확대를 위해 이 방면에 뜻을 같이 하는 동학들의 지속적인 연찬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몇 명의 작가가 어떠한 작품을 어디에 발표했는지, 그러한 자료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선행 연구도 거의 없었으며 주위에 자문을 구할만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던 차에 필자의 연구에 활기를 띠게 한 계기는 1988년 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와 때맞추어 중국 연변에서 간행된 도서가 소개되기 시작했고, 또 그 해에 비록 일부였지만 만주에서 발행됐던 滿鮮日報(1939년 12월~1940년 9월분)가 국내의 한 출판사에 의해 영인 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과의 교신은 물론,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내왕까지 빈번해지면서 연변대학의 K교수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K교수와 필자는 연배도 비슷했고 다같이 일제강점기의 재만한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터여서 언제나 화제가 풍부했다. K교수는 창립직후의 연변대학에서 원로작가인 金昌傑선생(1991년 11월 22일 작고)의 강의를 들었을 뿐더러 지금도 가까이 모시고 있다면서 근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K교수는 필자가 金昌傑선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작품도 많이 구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자 「김창걸단편소설선집 - 해방 전편-」(1982년, 중국료녕인민출판사刊)을 보내주었다. 영인본으로 간행된 만선일보에는 金昌傑의 소설이 6편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더 많은 자료 확보에 고심하고 있던 차에 14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김창걸단편소설선집」은 필자의 재만한인문학 연구가 崔曙海, 姜敬愛, 安壽吉 등에 이어 金昌傑까지 확대되는데 큰 힘이 돼주었다. 그 뒤에도 K교수는 인편을 통해서라든가 한국에 올 때마다 각종 자료를 갖다 주어 金昌傑에 관한 한 필자는 적지 않은 자료를 갖출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필자는 1990년 「일제강점기 재만한국문학연구」라는 책을 간행하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재만한인문학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조그마한 시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완벽한 일제강점기 재만한인문학의 연구를 위해서는 각종 자료(시대적·사회적 배경에 관한 자료로는 관동군, 滿鐵, 괴뢰 만주국의 이주민 관계 자료, 문화적 측면의 자료로는 만선일보의 완질 확보와 실체 규명 및 각종 작품집의 수집, 작가 관계의 자료로는 인적 사항과 작품 연보 등)를 구비한 다음 각 작가별로 전 작품에 대한 치밀한 분석 작업과 함께 엄정한 평가 작업을 유기적인 연관 관계 아래 펼쳐 나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때 드높았던 재외한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요즘에는 좀 식은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우리 나라 현대문학사의 다양성과 저변확대를 위해 이 방면에 뜻을 같이 하는 동학들의 지속적인 연찬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