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호 2005년 6월] 인터뷰 신임 동창회장 인터뷰
"잘 조직화된 기별모임이 큰 자랑"
AMP동창회 朴泳俊회장 (코리아리서치센터 회장)
최고경영자과정(AMP)동창회는 지난 4월 14일 신임 회장에 코리아리서치센터 朴泳俊(행정64 68, AMP 35기 본회 부회장)회장을 선출했다.
- 동창회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다른 대학을 포함해 모교 내에서도 AMP동창회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동창회가 짜임새 있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얘기이겠죠. 4천여 명의 회원 대부분이 대기업체 간부급 임원 및 중견기업 오너들로 구성돼 있는데, 상당히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별 모임이 조직화돼 있기 때문에 전체 동창회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한 기당 7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이들은 다시 10명이 한 그룹을 형성해 개별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는데. "분기별로 회원들이 원하는 강사를 초청해 열고 있는 조찬 강연회, 두 달에 한번 여는 회장단 회의 등을 통해 모임을 정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서울대 AMP대상' 시상인데 대상 선정을 상당히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 혹은 미래의 예측되는 행적으로 미루어 수상자로 적합한지 심사하고 있으며 시상은 매년 신년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또 `자랑스러운 교수상'을 선정, 교수들의 연구지원을 하고 있죠." - 회사를 경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조사를 의뢰 받아 했던 일보다 의뢰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지난 대선 때 盧武鉉대통령과 鄭夢準의원이 단일화 작업을 했을 당시 누가 대선 후보로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의뢰받은 적이 있으나 이를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령 조사 결과가 오차범위에 들 경우 어느 누가 지지율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그 결과를 놓고 서로가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논란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조사를 거절한 거죠." - 재학시절 `非고시파'였다고 하는데. "비록 법대에 다니긴 했지만 고시를 준비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답답하게만 생각됐던 일이었습니다. 법조계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보면 넘치는 자신감에서 좀 세속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망을 좀 했죠.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고시를 치르지 않겠다는 `비고시파'로 학생회 활동 등에만 열심이었죠. 그런데 3학년 2학기가 지나면서 같이 속해 있던 비고시파 친구들이 하나둘 도서관으로 가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업 경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졸업 후 바로 모교 경영대학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때 무급 조교로 근무하면서 마켓 리서치 등의 심부름을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죠."
-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는데. "분기별로 회원들이 원하는 강사를 초청해 열고 있는 조찬 강연회, 두 달에 한번 여는 회장단 회의 등을 통해 모임을 정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서울대 AMP대상' 시상인데 대상 선정을 상당히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 혹은 미래의 예측되는 행적으로 미루어 수상자로 적합한지 심사하고 있으며 시상은 매년 신년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또 `자랑스러운 교수상'을 선정, 교수들의 연구지원을 하고 있죠." - 회사를 경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조사를 의뢰 받아 했던 일보다 의뢰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지난 대선 때 盧武鉉대통령과 鄭夢準의원이 단일화 작업을 했을 당시 누가 대선 후보로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의뢰받은 적이 있으나 이를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령 조사 결과가 오차범위에 들 경우 어느 누가 지지율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그 결과를 놓고 서로가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논란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조사를 거절한 거죠." - 재학시절 `非고시파'였다고 하는데. "비록 법대에 다니긴 했지만 고시를 준비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답답하게만 생각됐던 일이었습니다. 법조계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보면 넘치는 자신감에서 좀 세속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망을 좀 했죠.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고시를 치르지 않겠다는 `비고시파'로 학생회 활동 등에만 열심이었죠. 그런데 3학년 2학기가 지나면서 같이 속해 있던 비고시파 친구들이 하나둘 도서관으로 가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업 경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졸업 후 바로 모교 경영대학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때 무급 조교로 근무하면서 마켓 리서치 등의 심부름을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