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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018년 11월] 문화 작가의 정원

작가의 정원 <11> 베스 샤토의 정원

메마른 자갈밭, 세계적인 정원이 되다


베스 샤토의 정원
메마른 자갈밭, 세계적인 정원이 되다


글·사진 문현주 (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





베스 샤토(Beth Chatto 1923-2018)는 정원사, 정원 디자이너, 정원 작가 그리고 유명한 베스 샤토 정원(The Beth Chatto Gardens)을 만들어 낸 여인이다. 나는 5월 하순 그녀의 정원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가능하면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이메일을 보내려고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앗! 그녀가 어제 돌아가셨다는 팝업 창이 뜬다.

나는 그녀가 돌아간 지 열흘 후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녀의 정원은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115km 정도 떨어진 에섹스(Essex) 주 콜체스터(Colchester)에 있다. 베스 샤토는 정원 가꾸기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며 영국 정원에 크나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이다. 그녀는 1987년 원예가들의 최고 영광인 왕립원예협회의 빅토리아 명예훈장(VMH)을 받았으며 2002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OBE)을 수훈하였으니 정원 분야에 남긴 그녀의 업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올해 94세였으며 58년 동안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베스 샤토 정원’에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그녀의 정원 인생은 스무 살에 남편 앤드류 샤토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남편은 식물의 자생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특히 지중해나 알프스의 토착식물을 연구하기 위하여 샤토 부부는 식물 여행을 자주 했다. 그리고 그들은 1960년부터 갖고 있던 과수원에 작은 집을 짓고 주변에 관심 있는 식물들을 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곳은 연평균 강수량 500~600mm 정도로 영국에서도 대표적인 건조지역이다. 정원은 6,000여 평 정도지만 대부분의 땅이 메마르고 자갈로 덮여 있었으며 부분적으로 습지까지 있었다. 이러한 척박한 지역에서 그녀는 정원을 가꾸었으며 다양한 시도와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 토질에 맞는 식물들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주변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찾아 과감히 정원에 들여놓았다. 이전에는 정원에 식재하지 않았던 비비추, 엉겅퀴, 앵초 등이 그녀의 도움으로 이제는 정원 식물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베스 샤토 정원은 다른 식물원이나 정원과는 다르게 공간을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큰 정원들은 꽃 이름이나 정원 디자인 양식에 따라 공간의 이름을 붙이지만 이곳은 자갈 정원(Gravel Garden), 왕사 정원(Scree Garden), 물 정원(Water Garden), 습지 정원(The Damp Garden), 숲 정원(Woodland Garden)이다. 즉, 생태조건에 따라 구획을 나누고 그 조건에 맞는 식물들로 화단을 꾸며 놓았다. 방문자들은 그곳에서 내 정원의 토양 조건이나 자연환경에 맞는 식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취미 정원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나오는 길에 식물 판매장(Nursery)에서도 그 분류에 따라 식물들을 전시하여 판매하고 있다. 그녀는 이 모든 작업을 글로 남겼다. 정원에 관한 자신의 노하우와 철학 그리고 식물에 대한 지식을 10권의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특히 ‘베스 샤토의 가든 노트북(Beth Chatto Garden Notebook, 1988)’은 그녀가 정원에서 경험한 것들을 12개월로 나누어 정원 일을 월별로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오래된 책이지만 아직도 영국에서 정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권씩은 갖고 있는 책이다.

베스 샤토는 정원 가꾸기의 제1원칙을 ‘적합한 장소에 적합한 식물을 식재하는 것(the right plant for the right place)’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내 정원의 기후와 토양 등 생태적 조건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식물을 선택하여 가꾸는 것이 아름답고 건강한 정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내 정원의 문제점들도 ‘시도와 실패’로부터 스스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녀가 말한 정원 가꾸기의 두 가지 원칙이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적용이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