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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2018년 3월] 문화 작가의 정원

작가의 정원<3> 민트빛 바다 옆 빨강 하양 장미 물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정원

문현주 가든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정원 여행

작가의 정원 <3> 민트 빛 바다 옆 빨강 하양 장미 물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정원




프랑스가 예술과 패션 그리고 음식 문화를 자랑한다면 그중에 패션 문화는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과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샤넬이 1910년대 여성의 몸을 고통스럽게 짓누르는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켰다면 디오르는 1946년 부드러운 어깨선과 잘록한 허리를 부각하여 여성의 아름다움을 다시 강조한 복고풍의 ‘뉴룩(New Look)’을 발표했다.

디오르는 1905년 노르망디(Normandy) 지역의 그랑빌(Granville)에서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곳은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대서양 연안에 있는 지역이다. 그의 생가와 정원은 1997년부터 박물관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그곳에 도착하니 입구에 그의 대표 작품인 ‘뉴룩’의 큰 포스터가 걸려 있다. 그리고 대문 안쪽으로 훤칠한 소나무가 나를 반긴다. 유럽 정원에서 흔하지 않은 광경이다.

주택을 개조한 박물관의 외관은 디오르가 좋아하는 분홍색의 벽면과 돌출된 자주색 창틀로 이뤄져있다. 박물관은 3개 층에 걸쳐 디오르의 삶과 예술세계를 떠올릴 수 있는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소장품을 비롯해 유품, 사진, 서적, 장신구, 향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왔다. 풍성한 소나무 숲이 바다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한 테라스가 있다. 그 앞으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의 색깔은 비취색이 아닌 민트색이었다. 테라스는 가운데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연보라색의 꽃이 연못가에서 화사하다.

꽃은 디오르의 디자인 세계에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는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할 때마다 즐겨 꽃의 이름을 붙였다. 뉴룩도 원래 코롤 라인(corolle-화관-line)이었으며 그 후 튤립 라인(tulip line), 뮤게 라인(muguet-영란화-line) 등으로 이름 지었다.

테라스에서 해변을 따라 분홍색과 흰색의 장미 넝쿨이 올라간 아치형 터널이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은 디오르의 동상이 있는 장미원으로 연결된다. 디오르는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 마들렌느와 함께 정원에서 장미를 가꾸며,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끼며 성장했다. 그의 천재적인 감성은 아마 이 정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미는 디오르의 디자인 세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꽃이 되었다. 장미는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장미 사랑으로 다양한 품종이 개발됐다. 그 새로운 품종에 개발자 이름이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지곤 한다. 풍성한 겹꽃으로 분홍색의 제킬 장미와 살구색의 단아한 헤르만 헤세 장미가 있다. 디오르의 이름을 붙인 장미 품종도 존재한다. 진한 붉은색에 중간 크기의 화려한 겹꽃으로 ‘크리스티앙 디오르 장미(Rosa ‘Christian Dior’)’가 그것.

맞은편 벤치에는 연세 지긋하신 부인이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다. 정원 투어를 하면서 늘 부러운 광경이다. 나오는 길에 화단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정원사가 보인다. 정원사는 은회색 잎이 나직이 깔리는 백묘국과 붉은 베고니아 꽃이 피어있는 화단을 정리하고 있다. 아마 베고니아의 묵은 잎을 떼어내어 붉은색의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리라. 그 화단을 보고 있자니 은회색 바탕에 규칙적으로 붉은색 동그라미 문양이 있는 옷감이 떠오른다. 일명, 땡땡이 문양이 연상되는 것은 이곳이 패션 디자이너의 생가라는 장소성 때문일까?

글·사진 문현주(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