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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9호 2018년 02월 (2018-02-14)

시국토론장·고시촌에서 창업단지로…‘녹슬지 않는 녹두거리’

청춘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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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캠퍼스 세대 동문이라면 한번쯤은 걸어봤을 녹두거리. 모교 관악캠퍼스 인근 대학동의 상업·주거지역을 가리킨다. 한때 황량한 벌판이었던 이곳은 대학 문화와 고시 문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다. 1975년 모교가 관악캠퍼스로 옮겨온 후 ‘관악세대’로 불린 모교 학생들은 녹두거리 곳곳의 식당과 술집, 자취방에서 저항 문화와 민주화 담론 등을 꽃피웠다. ‘벼슬산’인 관악산에 칩거하던 고시생들은 고시촌으로 내려와 터를 잡았고 인근 녹두거리의 저렴한 물가가 이들을 위로했다.
최근 녹두거리는 또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사법시험 폐지로 고시촌 인구가 줄어들고 학생들의 유흥가이자 놀이터 역할은 서울대입구역 상권인 ‘샤로수길’이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 그런가 하면 최근 영화 ‘1987’의 흥행과 함께 박종철(언어84입) 동문의 하숙집이 있었던 녹두거리는 민주화의 성지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수많은 서울대인의 이야기가 서린 녹두거리를 조명했다.



주점 태백산맥 당구장으로


녹두거리의 가게들은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의 몸과 마음을 배불리 먹였다. 녹두거리라는 이름도 70년대 후반 저렴한 가격에 동동주와 안주를 팔아 인기를 끈 ‘녹두집’에서 유래했다. 1980년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은 곳은 청벽집, 탈, 달구지, 두레박, 회빈루 등의 학사주점이다. 학내 집회와 시위가 있던 날이면 대만원을 이뤘다. 서울대 60년사에 따르면 금요일엔 2시 아크로 집회→4시 교문투쟁→8시 주점 뒤풀이→11시 자취방 토론이 정해진 코스였다.


1990년대 들어서 주점문화는 카페문화에 자리를 내줬다. 청벽집, 달구지 등 많은 주점이 문을 닫았다. 과외지도로 주머니가 넉넉해진 서울대생의 소비성향이 변한 탓으로 풀이된다. 1995년 한 일간지 보도에서는 “지금의 녹두거리는 사방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술집 105곳, 당구장 25곳, 오락실 8곳, 노래방 16곳, 비디오방 26곳이 몰려 있어 ‘녹두 라스베가스’로까지 불린다”며 “학생들이 1병에 4,000원 하는 미제 밀러맥주를 홀짝거리는 등 유흥가 부근 카페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들이 이제 이곳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고 묘사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90년대 향수를 자극한 신원호(화학공학94-01) tvN PD는 ‘태산’이라고 부르던 주점 ‘태백산맥’이 아직 있는지 궁금해 했다. 1988년 개업한 ‘태백산맥’은 90년대에도 끄떡없이 하루 1,000명씩 손님을 받았다. 타 대학 학생들의 예약을 받지 않을 정도였으나 2000년대에 경영 악화를 면치 못하고 당구장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1996년 문을 연 민속주점 ‘임꺽정은 살아있다’는 2014년 문을 닫았다가 유사한 이름의 해장국집을 오픈했다. 반면 ‘황해도 빈대떡’, ‘동학’ 등의 막걸리집과 호프집 ‘휘가로’, ‘녹두호프’ 등은 20년 넘게 건재한 모습이다. 개강파티, 일일호프, 종강파티 등의 단골 장소다.


녹두거리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학내 시위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80~90년대 녹두거리 서점 트로이카로 ‘그날이 오면’, ‘전야’, ‘열린글방’ 등이 꼽힌다. 이해찬(사회72-85) 동문 형제가 운영했던 ‘광장서적’처럼 모교 동문이나 가족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서점은 사회과학서적 외에도 민중가요 테이프와 가사집을 팔았고 시위 학생들의 책가방과 쇠파이프, 화염병 등을 맡아주곤 했다. 지금은 ‘그날이 오면’만이 후원회의 도움으로 자리를 이전해 계속 영업 중이다. 학생들이 신문과 유인물을 만들던 복사집 중에는 ‘집현전복사’가 1980년대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은 녹두거리의 동의어다. 관악산에서 내려온 고시생도 많았지만 신림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던 모교 고시생들이 다수 합격하면서 고시 동네로 더욱 입소문을 탔다. 윤석열(법학79-83), 원희룡(공법82-89) 동문 등이 고시촌 출신으로 유명하다. ‘돼지막’으로 불린 1평짜리 무허가 하숙집에서 출발한 고시촌은 고시원과 고시학원, 고시식당과 서점 등 파생시설과 함께 확장을 거듭했다.


고시생들은 고시촌에 면한 녹두거리의 술집과 당구장, 만화방, PC방 등을 즐겨 찾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모교 법대생들도 이에 빠지지 않았다. 신림동 토박이라는 한 택시기사는 “20여 년 전 서울대 법대 학생들과 녹두거리에서 밤새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러고서도 꼭 고시에 합격해 한 턱을 쏘곤 했다”고 회상했다. 법대생들이 호프집 ‘휘가로’ 등에 소위‘깔때기’를 두고 술을 마셨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박종철 거리’가 된 박종철 동문의 하숙집 터



‘박종철 기념거리’ 조성도


2007년 사법시험 폐지 발표 이후 고시촌과 녹두거리도 불가피하게 침체기를 겪고 있다. 골목마다 고시 관련 상점들의 업종 변경과 폐업이 눈에 띈다.


모교 학생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재학생 홍정우(건축15입) 씨는 “통학하는 학생들을 배려해 녹두거리보다 교통이 편리한 서울대입구에서 모임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녹두거리가 낡은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도 원인이다. “녹두거리가 차별화된 점은 과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술집들이었는데, 아곳에서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과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를 경험한 재학생들이 등을 돌리게 된 것 같다”는 홍 씨의 설명이다. 지역 상권은 변리사, 법무사, 회계사, 7·9급 공무원 등 신종 고시생들을 통해서 활로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저렴한 주거지를 찾아온 젊은 층의 유입도 반가운 변화다.


최근에는 모교와 인연 깊은 녹두거리의 활성화를 위해 모교와 동문들이 나섰다. 모교는 지난 12월 녹두거리에 청년 창업단지 ‘서울대 스타트업캠퍼스 녹두.zip’을 개소했다. 모교 학생과 각지의 청년 창업가들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꿈을 키우며 새로운 ‘대학촌’을 형성하게 한다는 취지다.


‘녹두.zip’은 불황을 겪는 고시학원과 독서실, 고시원 등을 임차해 리모델링하고 청년 창업가들에게 창업 공간으로 제공한다. 첫 입주자로 15개 팀 34명의 청년 창업가가 선정돼 창업 실험을 펼치고 있다. 모교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추진 중인 ‘서울대 청년 창업밸리’ 조성사업이자 지역사회와 상생을 도모하는 일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모교에서 장비와 인프라, 컨설팅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치열한 학생운동의 장이었던 녹두거리의 역사를 되새기는 움직임도 한창이다. 지난 1월 13일 관악구는 녹두거리에 ‘박종철거리’를 조성하고 선포식을 열었다. 박종철 동문이 모교 재학 시절 살았던 하숙집이 있는 골목이다. 기념 동판과 벽화 등으로 꾸민 박종철 거리 인근에는 내년 중으로 ‘박종철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다. <유종필 관악구청장 인터뷰 참조>


▽유종필 관악구청장 인터뷰 링크

http://snua.or.kr/magazine/view.asp?seq=13739&gotopage=1&startpage=1&mgno=&searchWord=&mssq=02006000



박수진 기자



모교가 지난 12월 조성한 청년 창업가의 공간 ‘녹두.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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